2012 Taize 보고서 - 박병철 대학부장

기독교세계 조회 수 2784 추천 수 0 2012.04.12 12:01:34

2012년 KSCF-떼제 교류 프로그램 참석 보고서

일시 : 2011년 11월 24일 ~ 2012년 1월 24일

 

박병철 대학부장

 

 

떼제로 향하며.......

 

KSCF와 연이 닿고부터 많은 경험들을 해왔다. 개인적으론 그런 경험을 쌓은 자신이 뭔가 대단하게 여겨지진 않지만, 문득 KSCF가 아니면 하지 못할 소중한 경험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그 시간들은 다채롭기도 하고 버겁기도 했다. 그런 과정들을 거치며 갖게 된 시선들과 사고, 가치 그리고 생활 방식의 변화는 지금의 내가 남들과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관심과 선택을 하게끔 했다.

이번 떼제 공동체 방문도 그렇다. 학생들이 해외로 나갈 때마다 주저하는 모습을 보는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잘 다녀오라고 했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이 길을 떠나려니 뭔가 준비가 부족한 느낌이다. 일정이 갑자기 정해져서 급한 일들을 마무리하고 떠날 차비를 하다 보니 절로 그런가보다 여기지만 그 탓만은 아닌 듯하다. 두 달이 그다지 길다고 하기도 짧다고 하기도 모호한 기한인데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많이 생각해보지 못했다. 왜 가는지 어떻게 지낼지에 대한 준비가 없는 탓이다.

그런 준비가 이번 여정에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까마는 지금껏 다녀본 여행 중 이만큼 준비 없이 떠난 적도 없는 듯하다. 게다가 나의 짐을 남은 이들에게 떠넘기고 훌쩍 떠나는 것이니 그 미안함도 한 자리 하고 내가 자릴 비운 사이 한 집 살던 동생은 집을 나간다고 하니 그 뒷감당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출국을 앞두고 마치 생을 마감하듯 주변 일들을 하나씩 짚으며 걱정하는 걸 보면 그 동안 내가 신경 쓰지 못한 일들과 그럼에도 나 자신을 옭아맨 요소들을 이제야 살피나 보다. 떠나지 않고는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자신과 거리를 두고 나 자신을 살피는 일. 일상에서 이런 패턴이 몸에 베인다면 사람들과의 관계나 삶의 내용을 좀 더 충실히 해 나갈 수 있었을 테지만 아마도 그게 안 되니 이런 시간들을 주시나 보다. 자신을 좀 더 살피고 소홀했던 자신을 찾아 위로하고 익숙했던 패턴을 점검하라는 거겠지. 신앙과 삶이 분리되지 않고 지속적인 방식들로 살아가기 위한 요령을 좀 익히고 돌아오길 기대하며 FTA 강행을 뒷전으로 하고 먼 길을 떠나보련다.

 

 

국경을 넘다.

 

지난 해 ‘아시아 에큐메니칼 트레킹’을 준비하며 오재식 선생님으로부터 중요한 물음 두 개를 받았다. ‘왜 아시아를 가려 하는가?’, ‘국경을 넘는 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당시 이 질문을 깊이 생각할 만큼 여력이 없었던 듯하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다뤄졌어야 할 물음임에도 프로그램 진행에 정신이 팔려 새로운 발견을 할 좋은 기회를 그냥 지나쳐야 했다. 이번 떼제 방문이 갑작스럽게 이뤄지긴 했으나 여유로운 일정 덕에 위 질문을 다시 던져보았다. 누군가 내게 ‘왜 떼제를 가려하는지. 그곳에서 넘은 국경은 어떤 것인지’를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하게 될지 말이다.

앞의 질문이야 주변의 권위나 경제적 이득이 있었다고 답할 수도 있겠으나 내심 떼제에 대한 기대가 컸음을 살필 때 이 질문은 진지하게 다가온다. 무엇 때문에 나는 떼제로 떠나려는 것일까? 동시에 젊은이들은 무엇 때문에 떼제로 향하는가? 떼제를 방문하는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이곳을 고향으로 여긴다고 한다. 많은 이들의 동경이 이곳에 있는 탓이다. 그 동경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다양할 것이다. 떼제에 머무는 동안 많은 이들에게 물었던 질문이지만 대답은 여러 가지였다. 공통점이 있다면 사람들은 이곳에서 특별한 안식을 느낀다는 점이다. 그래서 좀 더 그곳에 머무르고자 하는 이들이 많다. 나부터도 쉼을 얻기 위해 떼제로 향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쉼은 단순한 휴양의 쉼은 아니다. 모든 일상이 산술되어 평가되는 자본주의를 벗어나 다른 차원의 삶에 머무는 쉼이다. 정지된 듯한 프랑스 시골의 고요한 경치는 시끄럽고 복잡한 도시의 일상과 대조를 이룬다. 나눔을 통해 살아가는 이곳의 방식은 자본주의의 구조를 무력하게 만들며 사람들에게 다른 삶의 방식들을 제안한다. 이러한 방식의 차이는 그 시공간을 통해 사람들에게 다른 가치들을 제안하고 있었다.

떼제에 와서 사람들을 처음 만나면 대화 내용은 주로 어디서 왔으며, 이름은 무엇인지, 언제 떼제에 왔는지, 얼마나 머무는지, 장기 봉사자인지 단기 봉사자인지 등 일반적인 정보의 교류가 주를 이룬다. 워낙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니 시간이 흐르면 이런 대화들은 ‘How are you? Fine. Thanks. And you?’와 같은 자동 반사적인 대화가 된다. 그런데 떼제에서 경험한 독특한 일은 ‘어디에서 왔느냐?’는 질문이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답하면, ‘north or south?’ 하고 되묻는다. 이 질문은 나에게 무척 생소 했다. 처음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땐 ‘북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지.’ 되물었고 ‘없다’는 답변을 받으면 ‘북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으니 혹 만나면 나에게 알려 달라.’고 했었다. 이 대화는 한국인에 대한 외부 사람들의 시선을 가늠하도록 했다. 떼제 공동체 또한 북한의 어려움에 도움을 주고 있고, 기도로 그들의 어려움에 동참하고 있으니 이곳 사람들의 북한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대화를 통해 한국인이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스티나(Stina)' 라는 스웨덴 소녀는 지난 일 년 동안 북한을 위해 매일 기도했다고 한다. 그 친구와의 대화는 무척 흥미로웠다. 학교에서 보여준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처음 북한의 상황을 경험한 그녀는 북한 주민들의 가난과 굶주림으로 인한 목숨을 건 탈출을 보며 기도할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북한 독재의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고 난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갖는 부정적 이미지에 대해 주의를 주었다. 대화가 길어지면서 대화는 논쟁처럼 이어졌고 이런 느낌을 받을 즈음 대화를 마무리 했다.

북한에 대한 물음은 이러한 사례 말고도 여러 차례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경험을 통해 난 공간이 주는 다른 가능성들을 발견하게 됐다. 세계적으로 청년학생운동은 위기를 맞고 있다. 급격한 자본화와 경쟁 사회에서 젊은이들의 삶은 숨이 막힌다. 자신의 삶에 집중하기도 버거운 상황에 이웃을 돌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떼제라는 공간이 이런 젊은이들에게 쉼이 되고 있다. 젊은이들은 자본을 거스르는 독특한 체제를 지닌 영성 공동체에서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과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러한 공간은 국가 간의 벽을 넘어 소통의 장이 되고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젊은이들의 주 관심은 통일이 아닌 취업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한국인에 대한 주 관심은 남북 관계에 있었다.

대화를 통해 나는 세계에서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관심과 시선을 갖는지 발견하게 된다.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서로의 벽을 넘는 일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재조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떼제라는 공간은 국가의 장벽과 함께 자본주의의 장벽도 발견하게 해 주었다. 종교가 시대의 빛의 역할을 한다는 것은 암담한 미래에 대해 새로운 가능성을 비추는 일이어야 한다. 극도의 경쟁 사회에서 숨 막히게 조여 오는 일상의 반복은 그 끝이 얼마나 참담한지 쉽게 가늠하게 한다. 많은 이들이 그 끝이 비참하다는 것을 예측하면서도 다른 길을 찾지 못한다. 기독교가 책임져야 할 소명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경계를 넘는 초월적인 삶의 방식들, 그러나 실제 가능한 지점들을 제안해야 한다. 국가를 넘어 방문한 떼제는 이러한 가능성들을 가늠하도록 젊은이들을 부추기며 시도할 수 있는 기운을 제공하고 있었다.

 

 

베를린 유럽대회에서

 

떼제는 매 해 떼제 기도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이들을 한자리에 모아 함께 기도하기 위한 대회를 연다. 올 해는 12월 28일부터 1월 1일 아침 예배까지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베를린의 ‘MESSE BERLIN’ 건물에서 유럽대회를 열었다. 이 모임에 2만 여명의 참가자들이 함께 했고 이 모임을 준비하기 위해 5000여 명의 자원 봉사자들이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방대한 규모의 집회라 준비 과정부터 꽤나 많은 수고가 들여졌다. 자원 봉사자들은 대개가 이 전에 떼제 공동체를 경험한 이들이었으며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는 일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기간 동안 참가자들은 홈스테이나 지역 교회의 도움으로 숙박 문제를 해결하였다.

일정은 매일 베를린의 구역별 아침 기도로 시작 된다. 각 구역의 성당에서 그룹 지어 기도회가 진행 된다. 아침 기도를 마치면 공동 기도처인 ‘MESSE BERLIN’으로 모여 점심을 먹는다. 이 후 공동 기도회가 열리고 언어별로 구분된 네 개의 기도처에서 공동으로 기도를 드린다. 이 기도처는 같은 모양으로 디자인 되었으며 각 지역 언어와 영어로 동시에 통역 된다. 기도회를 마치면 워크샵이 주제별로 진행되는데, 떼제 기도에 관한 설명에서부터 에큐메니즘, 베를린 통일, 본훼퍼의 복음교회 등 다양한 주제들이 ‘MESSE BERLIN’ 건물과 베를린 시 곳곳에서 열린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기호에 따라 알맞은 주제를 선정하고 워크샵에 참가한다. 행사 기간 동안 두 번의 워크샵을 참가 할 수 있으며 마지막 날엔 지역별 모임을 가졌다. 한국은 중국, 홍콩, 일본과 한 그룹을 이루었다. 그룹 모임이나 워크샵이 끝나면 저녁 식사를 하고 저녁 기도회에 참여한다. 사흘간 유럽 미팅 일정은 이렇게 진행 되었다. 장소의 이동과 내용의 차이를 빼면 모든 일정은 떼제에서의 일상과 같다.

이러한 대규모의 기도에 놀라운 점은 다양한 배경과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찬양과 묵상에 능동적으로 참여 한다는 점이다. 각각이 자신의 편의에 따라 다양한 위치와 포즈를 취하지만 기도시간 만큼은 모두가 진지하게 참여한다. 기도가 끝나면 삼삼오오 각기 자신들의 그룹으로 돌아가 대화를 나누거나 노래나 춤, 게임을 즐기며 다양하고 자발적인 활동을 이어간다. 대회 기간 동안 이 공간은 잠시도 쉬지 않고 있었다. 쉬고 싶은 이들은 복도 바닥이나 벤치에 누워서 자유롭게 휴식을 취한다. 조용히 침묵으로 기도를 드리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이곳은 많은 빛을 거울로 반사시켜 흰 천에 비치도록 설치 된 조형물이 신비감을 갖게 하고 주변에 설치된 이콘들과 적당히 어두운 조명이 기도에 집중하도록 돕고 있었다. 떼제 대회의 흐름은 하루 세 번 기도와 한차례의 워크샵 정도로 진행 되지만 곳곳에 비치된 요소들은 다양한 사람들의 취향을 충분히 수용하도록 숙고한 흔적들을 찾아보게 한다. 떼제에 관심 갖게 된 요인 중에 하나가 로제 수사가 그리스도의 화해에 깊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왜 관심을 갖게 되었는가도 중요하겠으나 어떻게 진행해 나갔는지에 대한 점도 꽤 관심이 가는 부분이다. 로제 수사는 초대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방문을 희망하는 이들을 귀하게 여긴다. 다양한 사람들이 머무는 동안 가능한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배려들을 제공한다. 이러한 노력이 가톨릭과 정교회의 교회 정통을 이해하고 떼제 공동체에 접목시키는데 이른 것이다. 유럽 대회에서도 이러한 떼제 공동체의 노력과 그동안의 노하우가 잘 드러나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모여 환상적인 분위기에서 기도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제공하는지는 대회의 의의를 살피는 중요한 물음이 될 듯하다. 지역별 미팅을 통해 한ㆍ중ㆍ일ㆍ홍콩 젊은이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우리는 유럽의 지역적 상황이 주는 이질감에 대한 공감대를 발견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공감대는 화해를 가능케 하는 토대를 마련해주었다. 비슷한 문화권에 살아가지만 동북아시아의 역사, 정치, 경제 등의 상황을 살필 때 우리 안에 자리한 팽팽한 긴장들을 발견할 수 있다. 비록 표면으로는 잘 드러나진 않고 서로가 이러한 긴장들을 잘 감지하진 못하지만 우린 많은 갈등을 안고 살아간다. 그렇기에 우리 안의 갈등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풀어갈 방식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중요한 과제이다. 우린 삶에 베인 이질적인 습성들로 인한 보다 직접적이고 치명적인 삶의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상징처럼 가시적인 대화의 통로를 통해 상징적인 화해의 몸짓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로제 수사가 자신의 밥상에 손님을 초대하는 것처럼 갈라진 국경을 넘는 방식들을 함께 만들어야 할 것이다.

떼제의 유럽 대회는 이런 점에서 상징적인 사건을 남기고 있다. 독일의 나치 정권이 행했던 아우슈비츠의 대학살의 상처는 이번 유럽 대회 동안 2만 명의 참가자들을 자신의 집에서 쉴 수 있도록 자신의 집에 초대한 베를린 시민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화해에 참여하는 상징이 되었다. 이런 사건을 통해 보다 많은 이들이 화해의 통로로서 떼제 공동체를 찾을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 유럽 대회가 사건으로만 머무는 것이 아닌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이루는 화해가 되기 위해 각자의 자리를 점검해야 한다. 베를린 미팅을 마치며 한국으로 돌아와서 어떤 화해의 상징들을 누구와 함께 준비할지에 대한 숙제 하나를 가지고 왔다. 우린 화해로 이끄시는 그리스도의 초대에 참여 할 이들을 위한, 한국의 정황에 맞는, 처소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장을 통해 다양한 시대의 갈등이 풀리고 벽이 허물어지는 상징들을 남겨야 한다.

 

 

내면의 울림을 찾아 침묵하기까지.......

 

떼제에서 장기체류자의 생활은 군 생활과 많이 유사하다. 그만큼 강제적이진 않지만 규칙적인 일상이나 노동의 분배에 있어서 유사한 부분이 많다. 단체 생활이 갖는 습성 탓이리라. 일정부분 필요함을 느끼면서도 종교가 가진 자율성을 고려해볼 때 묘한 긴장을 느낀다. 어떻게 이점들을 충족시키며 공동체를 평화와 참여로 이끌 것인가? 많은 이들이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떼제의 경우 이런 점들은 서로간의 신뢰를 통해 극복해 가는 듯하다. 공동체 일원들은 개개인의 사정에 대해 가능한 배려하려고 애를 쓴다. 그런 탓에 누군가 양해를 구하는 일이 발생하면 스스로가 먼저 무리한 부탁은 아닌지 가늠하도록 한다. 일례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날 주변 동료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을 쉰 적이 있었다. 당시 동료로부터 받은 대답은 ‘무엇이 본인에게 더 중요한지를 먼저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반응은 사람들에게 쉼 이상의 효과를 가져다준다. 이런 경험들이 중첩되면서 이곳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는 것을 보게 되었다.

삶을 살아가며 질문을 던지는 일은 보다 다채롭고 풍성한 가치를 발견하는데 도움이 된다. 걸으며 질문하라는 인디언의 속담처럼 질문은 삶의 연속이 되어야 한다. 이런 질문들은 그동안 내가 확신하고 있던 것들이 지닌 오류들을 발견하게 하고 이를 넘어설 여지를 만들어 준다. 한편으론 어떤 확신이 섰을 때 그것에 대한 위험들을 견제하게도 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들은 때론 무엇을 결정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준다. 나를 지도한 수사님으로부터 기도로 묻고 침묵 속에서 가슴에 울리는 응답을 듣는 방법을 제안 받았다. 많은 이들이 신앙의 감동을 통해 삶의 확신을 얻지만 그로 인한 다양한 오류들도 발생하고 있음을 살필 때, 이러한 방법들은 자칫 위험할 수 있다. 평소 이런 위험에 대한 경계를 가진 터라 제안 받은 방법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떼제에서 생활하는 동안 워낙 복잡해진 사회에서 어느 것도 분명하게 드러낼 수 없는 혼란스러운 정황들이 우리의 신앙을 복잡하고 불편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수도원의 단순한 생활은 복잡한 시대에 반하는, 저항하는 행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신앙인의 삶이 시대의 한계를 넘어 보다 나은 세계로 향하고 궁극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간다고 할 때 매 순간 적절한 방식의 시도들이 필요하다. 치밀함과 신속함을 미덕으로 삼는 세파에서 단순함과 느림은 저항의 한 형태가 될 수 있다. 이것이 단순한 객기가 아닌 도약을 위한 과정이 되기 위해 지속적으로 가능한 방식으로 창조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들은 이성적 분석과 함께 내면의 울림과 감동을 통한 행동의 변화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침묵 속에서 내면을 두드리는 초월의 세계와 만나는 체험을 제안 받은 것이다.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고 비판적 사고로 현재를 견지하는 것이 때로는 자신에게 어떤 결단과 행동을 수행하는데 장애가 될 수 있다. 적절한 핑계를 만들어 자신을 합리화 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여건만을 찾아 적절히 처신하는 교만에 빠트릴 수 있다. 떼제 공동체 생활을 통해 단순함이 지닌 초월적 세계와의 소통 방식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시대의 필요한 운동이 어쩌면 거센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마음을 고요히 하고 내면 깊은 곳에서 울리는 신의 음성을 듣는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그간 신앙인들이 시대의 상황에 뛰어들어 문제 해결을 위해 뛰었다면, 지금의 다채롭고 혼잡한 시대에서는 오히려 호흡을 늦추고 침묵하는 방식을 통해 신의 소리를 진지하게 듣는 신앙의 형태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단순한 삶과 신앙의 형식들을 통해 깊은 성찰을 구해야 할 때이다.

 

 

거룩하게 구분된 공간

 

이콘과 촛불, 천 등. 색체와 떼제의 음악이 주는 미적 요소들과 침묵의 시간은 기도에 몰입하도록 돕는 좋은 장치들이다. 화해의 교회(때제 공동체 예배당)는 곳곳에 섬세하게 이러한 장치들을 비치해 두고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기도에 참여하도록 돕는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참여자들을 보다 경건하게 하고 내면의 다른 차원으로 이끄는데 도움을 준다. 개신교가 권위적인 전통을 벗으며 놓쳐버린 신앙의 지점들이 있다.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할 영역이 부재함에서 오는 신앙적 동력의 상실이 이에 속할 것이다. 우리의 삶을 어떻게 다른 차원으로 이끌고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의 문제는 고민 되어야 하며 동시에 보호 되어야 한다.

장기 체류자로 2개월 정도 보내면서 유럽의 젊은이들과 티올(Tieul)이라는 건물에서 기숙사처럼 머물며 지냈다. 그러는 동안 처음 떠나올 때 가졌던 유럽에 대한 선입견들이 많이 사라졌음을 느낀다. 이곳 장기체류자들과 함께 보내며 이들 속에 내재된 인간적인 면모들을 많이 발견한다. 물론 다소 한국과 정서적으로 차이는 있겠지만 서로를 대하는데 능동적인 체류자들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인 품성이 다들 선해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다른 개성을 지닌 이들이 한곳에서 공동체로 생활하면서 갈등이 없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두 달간 지내는 동안 나는 이곳에서 어떤 큰 다툼이 일어난 일을 본적이 없다. 사소한 갈등은 있으나 곧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며 일들을 풀어가려 했고 이러한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 질문을 던져 보았다.

생활을 통해 발견한 것은 떼제의 기도와 화해의 교회라는 공간이 떼제 공동체를 지탱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는 위태로운 공간에서 평화가 가능하도록 하는 그 모든 질서 중심에 화해의 교회가 버티고 있었다. 산의 정상 오르면 경외감이 마음을 사로잡듯 어떠한 공간이나 장치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특정한 기질들을 드러내도록 돕는다. 떼제라는 공간은 젊은이들에게 그러한 장치가 되고 있었다. 누구나가 떼제에 와서 생활하면 자신의 숨겨진 선한 기질들을 드러낸다. 실제 떼제의 화해 교회는 정적이고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처럼 보이지만 매일 수사님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꾸준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사람들에게 감지하지 못 할 만큼, 그러나 분명한 역동들을 창조하도록 돕는다. 어느 순간부터 기도를 드리며 오늘은 어떤 변화를 줬으며 어떤 효과들을 기대 했을까하는 궁금증을 안고 예배당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런 변화를 통해 어떤 공간과 방식들은 사람들을 능동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생각을 가져보게 된다. 비가시적이나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는 조심성과 세심함을 통해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스스로 변화되도록 추동하는 것이다.

사람의 변화 과정이 교육이라고 할 때, 떼제의 생활은 꽤나 집요하고 탁월한 교수법을 지녔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국의 기독학생들에게 삶의 변화를 주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하면서 거듭되는 실패와 조바심으로 스스로가 매너리즘에 빠지고 있음을 자주 발견한다. 떼제 경험은 문득 사람이 변화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중요한 요소들을 그동안 빠트린 것은 아닌지 살펴보게 했다. 바로 공간에 대한 고민이다. 어떠한 공간은 굳이 무엇을 시도하지 않아도 스스로 겸허해 지거나 진지해 지도록 돕는다. 내용이나 교수법만을 중시하며 무엇인가를 전달하려는 태도가 어쩌면 서로간의 경계를 만들고 소통의 장애를 키웠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내용과 방식은 감추어 졌으나 색채나 소리, 침묵을 통한 진지한 참여와 같은 우회적인 방식들이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며 적극적으로 변화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고요히 보내는 시간동안 자신의 내면에 이는 역동들을 발견하고 일상에서는 발견하지 못한 자신을 돌아보도록 돕는 것이다.

공간이 주는 가능한 지점들이 있다. 프랑스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는 떼제 공동체가 지닌 방식들이 꽤나 적절한 방식처럼 보인다. 한국으로 돌아오며 갖는 숙제 하나는 한국 사회가 갖는 제약들 속에서 변화가 가능하도록 돕는 공간들을 창조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러한 공간을 창조하는 작업이 기독교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시대에 요청되는 일들을 창조하고 그 영역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일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라 할 때, 복잡한 현 시대에 기독교는 사람들로 하여금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교세의 확장이나 세례자 명단을 늘리는 일이 아닌, 교단과 종단의 벽을 넘어 누가 참여해도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다른 차원의 공간을 창조하는 일이 오늘 한국의 기독교의 중요한 과제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세계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을 고스라니 안고 있는 오늘의 한국기독학생들에게 KSCF는 그들의 삶을 다른 차원에 이끌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어떠한 방식이 가능한지는 쉽지 않은 물음이겠으나 떼제 공동체를 통해 좋은 지침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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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기독교세계 짐바브웨를 다녀와서 -5 file KSCF자료정리간사 2009-07-01 6772
32 기독교세계 봉쇄 수녀들, 수도원 박차고 나선 이유 KSCF자료정리간사 2009-06-30 9641
31 기독교세계 1992년'김영삼장로위한조찬기도회'를규탄하는기도회(1992년12월07년,KSCF외) file KSCF자료정리간사 2009-06-26 9838
30 기독교세계 짐바브웨를 다녀와서 -4 file KSCF자료정리간사 2009-06-24 8207
29 기독교세계 짐바브웨를 다녀와서 -3 file KSCF자료정리간사 2009-06-16 7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