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마산에서는 거대기업과 행정기관이 짝짜쿵이 되어 아파트 용도로 바다를 매립한 후, 거기에다 조선기자재 공장을 유치하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물이 맑고 경관이 아름다워 수정만(水晶灣)으로 불리는 곳이 바로 그곳입니다.

이곳에 조선기자재 공장이 들어오면 바로 그 매립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정마을은 소음과 분진, 쇳가루 등으로 인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이미 STX조선이 들어가 있는 진해시 죽곡마을의 생생한 사례가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죽곡마을을 그렇게 만들어놓은 STX라는 거대기업이 수정마을까지 들어오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의 글(평생 한나라당만 찍던 할매들이 변한 까닭)에서도 썼듯이, 행정기관과 주민들이 싸우면 대개 백전백패 주민들이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와 달리 이번 싸움은 거대기업과 행정기관의 짝짜쿵도 잘 통하지 않습니다. 만만찮은 상대를 만난 것입니다.

왼쪽부터 오틸리아 수녀, 요세파 원장수녀, 그리고 오른쪽 스텔라 수녀입니다.


이 싸움이 만만찮게 된 것은 바로 그 수정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트라피스트수녀원 수녀님들의 공이 큽니다. 주민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수녀원은 평소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데다, 바깥세상 하고는 일체 교류를 하지 않기 때문에 공무원들도 만만하게 봤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을에 사는 무식한 촌놈들만 잘 구스르면 될 것으로 생각했겠지요."

그랬습니다. 그 수녀원은 이른바 '봉쇄수도원'이랍니다. 국어사전에 찾아봤더니 " 바깥 세상과 일절 접촉을 금하는 수도원."이라고 되어 있네요. 특히 봉쇄수도원 중에서도 가장 엄격하기로 소문난 곳이 바로 이곳 트라피스트수녀원이라는 설명도 있었습니다.

엊그제 천주교 마산교구청 마당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 중인 트라피스트수녀원 장혜경(요세파) 원장수녀님을 만났을 때도 장 수녀님이 "우리 수녀원이 봉쇄수도원인 거 아시죠?"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카톨릭 신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그게 뭔지 물었습니다.

한 번 들어가면 평생 나오지 않고 새벽 3시에 일어나 기도와 독서, 노동으로 이어지는 안거와 피정만 하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무식하게 물었죠. "평생 수도로 자신의 구원만 얻는 건가요?"

그랬더니, 일반 사람들은 돈과 명예, 권력 등 물질과 동시에 행복을 찾으려 하지만, 이곳에서 수도하는 수녀들은 그런 물질을 배제하고 행복을 구하려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수정만 사태만 아니었으면 평생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을 수녀들이 봉쇄를 풀고 바깥세상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장혜경 원장수녀님은 1984년 일본의 트라피스트수녀원에 입회한 후, 87년 이곳 마산에 수녀원이 설립되자 옮겨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곳에 수녀원이 생긴 후 22년만에 처음으로 봉쇄를 푼 것이지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그곳에서 수도 중인 28명의 수녀님들은 죽을 때까지 바깥세상에 나오지 않을 분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봉쇄를 풀었을까요? 

"아무리 수도가 중요하지만, 봉쇄를 지키기 위해 주민 1000여 명의 고통을 외면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뜻을 저버리는 것이잖아요. 아무리 봉쇄 수도가 중요해도 그건 수단일 뿐이죠."

핍박받는 사람들을 위해 낮은 곳으로 임했던 예수 그리스도처럼 행정과 자본권력에 신음하는 주민들을 버릴 수는 없었다는 대답이었습니다.

왼쪽부터 스텔라 수녀, 오틸리아 수녀, 요세파 원장수녀.


'혹, 마산시나 STX에서 지금보다 훨씬 좋은 입지에 더 좋은 수녀원을 지어준다면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 물어봤습니다. 즉각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주민들 다 그렇게 해준 다음이라면요."

그런데 실제로 그런 제의가 있었다고 합니다. 주민들과 관계를 끊으면 수녀원만 이주시켜주겠다는 회유가 있었다는 겁니다. 거기에 대해서도 장 수녀는 이렇게 간단히 대답했습니다.

"우리만 살겠다고 우리만 좋은 곳으로 옮겨간다면, 우리가 그런 삶을 어떻게 견딜 수 있겠어요?" 그러면서 회유하러 온 공무원에게 "주민들부터 먼저 설득시켜라"고 말해주었답니다.

트라피스트 수녀원에서 생활하는 수녀는 모두 28명. 그 중 수련 중인 5명과 주방 책임자 등을 제외하고 18명은 교대로 농성에 참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요세파 원장수녀와 스텔라, 오틸리아 수녀는 아예 상근 붙받이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젊어 보이는 스텔라 수녀는 지금의 상황이 마치 영화 속의 일인양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내부에서만 살다 보니 가끔 공무원을 상대해보면 모두들 친절하고 위해주시기만 했어요. 그래서 이번 일이 일어나고 난 뒤에도 이렇게까지 흘러가고 있다는 것은 몰랐죠. 그런데 외부에서 면회 오시는 분들 말씀 속에서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다'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이번 일을 보면서 왜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건지를 알게 되었어요."

젊어보인다고 말씀 드렸지만 수녀님들은 생각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습니다. 저는 내심 장혜경 원장수녀님도 저보다 나이는 아래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물어봤죠.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수녀님은 나이를 물어보면 안되는 거죠?"

"아뇨. 수녀라고 안 될 게 뭐 있어요? 저 58년생이예요."
"헉! 저보다 다섯 살이나 위네요?"
"네, 저도 먹을만큼 먹었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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