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조회 수 10858 추천 수 0 2009.04.14 09:35:32

Informed in the blog of Bruce Gagnon, Space4Peace(Organizing Notes)
Saturday, March 28, 2009

In preparation for my upcoming trip to South Korea for the Global Network’s annual space organizing conference I’ve been reading some about the post-WW II history of the country.

Keeping in mind that today the US and Japan are working overtime to create further tensions with North Korea, threatening to attack any satellite launch they might do in coming days, it is important to put present events in the larger historical context of the region.

Often in the US we just blindly follow our governments foreign policy pronouncements as gospel because we are simply ignorant about history.

So with that in mind I thought I’d share a few items that seemed particularly relevant to me.

Japan’s long brutal occupation of Korea was supported by the often-held notion of all colonizers - manifest destiny. In a memorandum, kept secret until 1924, Washington recognized Korea as a Japanese protectorate and Tokyo recognized US sovereignty in the Philippines.

After Japan was defeated in WW II, the US appointed pro-Japanese collaborators in Korea as the core of the new governing power structure between 1945-48.

A reporter for the Chicago Sun wrote in 1946 that the US military set up in Korea, “a government by [pro-Japanese] collaborators representing a conspiracy of insufferable corruption,” and “a police state so savage in its suppression of man’s elementary liberties that it was difficult to find a parallel for it.”

When the Republic of Korea was established in 1948, this right-wing state apparatus was handed by the US to Syngman Rhee.

According to Kyungmo Chung, “Syngman Rhee’s government was incapable of redressing popular grievances. Yet he pushed through one illegal constitutional amendment after another in order to perpetuate his corrupt power. The abuse of his presidential power reached its zenith when he ran for a fourth term at the age of 85 in 1960 and rigged the election to a degree unprecedented in Korea. The accumulated haan (hard knot formed from accumulated frustration and resentment due to grievous wrongs done) developed into the April 1960 Student Revolution that toppled Rhee’s regime and led to a new government…but it was short lived as Park Chung Hee seized power at gunpoint in 1961 and ruled brutally.”

Bruce Cumings, author of Origins of the Korean War, wrote, “The division of Korea [into North and South] occurred in the last five months of 1945. The first occurred during a nightlong session of the State-War-Navy Coordinating Committee in Washington, DC, August 10-11, 1945. Assistant Secretary of War John J. McCloy, a figure of maximal importance in postwar US diplomacy, later to be designated by New Yorker political correspondent Richard Rovere as the ‘chairman’ of the eastern establishment, asked two colonels, Dean Rusk and Charles Bonesteel, to withdraw to an adjoining room and find a place to draw a line across Korea; they were given thirty minutes. Rusk, of course, went on to become a key figure in US Asian diplomacy in the 1950s and later Secretary of State during the Kennedy and Johnson administrations. Bonesteel later commanded US forces in Korea.

“The decision on the 38th parallel, although made in thirty minutes, was based on years of planning, as were other decisions at the time. Within a year of Pearl Harbor, planners in the State Department had begun to worry about Soviet involvement in or control of Korea, viewing this as a threat to Pacific security. They thus began the decisive reversal of the traditional US policy toward Korea, one of non-involvement and acquiescence in or support for Japanese designs on the peninsula.”

During the Korean War (1950-1953) the US bombed 99% of all above-ground structures in North Korea. Even though a ceasefire was agreed to on July 27, 1953 the Korean War is not officially over.

In 1952 Robert Oliver, a US political adviser to Syngman Rhee, said, “Its [Korea's] primary role has been that of a buffer state. Never strong militarily and never ambitious for expansion, Korea has not in itself been a threat to anyone. Its significance lies now (as it has in the past) in the fact that it occupies the strategic heartland of north Asia, surrounded by China, Japan and Siberian Russia.”

Russians have long maintained that the US-South Korea-Japan military alliance would inevitably perpetuate military tensions in the region rather than promote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They were right. Today the US uses the “threat” of North Korea to set up a massive offensive military machine in the region that is really being used to help surround Russia and China.

The Korean people in North and South do not want another war or a permanent division of their country. They aspire to peaceful reunification without negative interference by foreign powers.

North Korea is not a significant threat to anyone. They can't even properly feed their own people. They are not going to fire a missile unprovoked at Japan or the US. The US is once again playing mind games.

posted by Bruce Gagnon | 2:28 PM

* Note by No Base stories of Korea

Fwd: For the art work on the division of Korea in 30 minutes.

* Related blog*

* Korean translation of the article above*

글로벌 넷워크의 연간 우주 조직 회담으로 다가오는 한국 방문을 위해 나는 한국의 2 차 대전 이후 역사들을 읽고 있었다.

오늘날 미국과 일본은 북한과의 긴장을 증가하기 위해 과도하게 작업하고 있다는 것을, 이들은 며칠 후에 북한이 할 지 모르는 위성 발사를 공격하기 위해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현재의 사건들을 그 지역의 좀 더 큰 역사적 콘텍스트에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그저 역사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미국에서 우리 정부의 외교 정책 발표를 자주 비판없이 복음처럼 따른다.

그 것을 염두에 두면서, 나에게 특별히 관계된 것처럼 보이는 몇 가지를 나누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길고 야만적인 점령은 모든 식민주의자들이 자주 가졌던 관념- 대헌장-에 의해 지지되었다. 1924 년까지 비밀로 지켜졌던 한 비망록에서 워싱턴은 한국을 일본의 한 보호령으로 인식했고 동경은 필리핀에서 미국의 주권을 인정했다.

일본이 2 차 대전에서 패하자 , 미국은 1945 년 부터 1948 년 사이 새로운 지배 세력 구조의 중심으로 친일 협력파들을 임명했다.

1946 년 시카고 선의 한 기자가 쓰길, 한국에서 미군정은,
“참을 수 없는 부패의 음모를 대표하는 [친일] 협력자들의 정부” 를 세웠고 “인간의 기본적 자유들을 억누름에 있어 너무도 야만적인 경찰 국가를 세워 그 것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라고 했다.

1948년 대한 민국이 건설되자 이 우익 정부는 미국에 의해 이 승만의 손으로 넘겨졌다.

정 경무에 의하면, “ 이 승만 정부는 대중의 슬픔을 보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타락한 권력을 영구화 시키기 위해 비합법적인 헌법 개정을 밀고 나갔다. 그의 대통령 권력 남용은 1960 년 85세 때 4 번째 임기를 맞으며 절정에 달했고 한국에서 선행하지 않았던 정도로 선거를 날림으로 만들었다. 축적된 한( 탄식스러운 오류들로 인해 축적된 좌절과 분노로 형성된 단단한 매듭)은 1960 년 4 월 학생 혁명으로 진전되었는데 이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부를 세우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것은 1961 년 박 정희가 총구로 권력을 잡고 야만적으로 지배하면서 단명하였다.

브루스 커밍스, 한국 전쟁의 기원 의 작가는 썼다. “남북한으로의 한국의 분단은 1945 년 마지막 다섯 달 동안 일어났다. 그 첫번째는 1945 년 8 월 10-11 일 국가-전쟁-해군 코디네이팅 위원회의 밤새 지속된 세션에서 일어났다.

전쟁 차관보 존 맥클로이, 전쟁 후 미 외교권에서 최고의 중요성을 지니고 후에 뉴욕 정치 특파원 리처드 로비어에 의해 동양 설립 ‘의장’으로 명명 된 존 제이 맥클로이는 딘 러스크와 찰스 본스틸 육군 대령을 불러 인접한 방으로 와 한국을 가로 지르는 선을 긋길 부탁했다: 그들에게는 30 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러스크는 물론 1950 년대 미국 아시아 외교의 핵심 인물이 되었고 케네디와 존스 행정부 의 국무 장관을 맡았다. 본스틸은 나중에 주한 미군을 지휘했다.

“ 38 선 결정은 30분 만에 만들어졌지만 당시 다른 결정들과 마찬가지로 몇년에 걸친 계획에 기반한 것이었다. 펄 하버 사건이 난 지 1 년 안에 국무성은 한국에서의 소비에트 참여내지는 통제를 태평양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에 대한 전통적인 미국 정책, 일본인들의 반도 디자인에 대한 불참 내지는 묵인 또는 지지를 결정적으로 뒤집기로 했다.

한국 전쟁 기간 (1950-1953), 미국은 북한 지상 구조의 99 % 이상을 폭격 햇다. 1953 년 7 월 27일 휴전 협정이 동의됐어도 한국 전쟁은 공식적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1952 년, 이 승만의 정책 자문관이었던 로버트 올리버는 말하길,

“[한국]의 주요 역활은 완충 지대 그것이었다. 군사적으로 강하지도 않았고 확장 야욕도 없었던 한국 자체는 누구에게나 결코 위협이 아니었다. 그것의 중요성은 (과거에도 그랫던 것처럼) 그 것이 중국, 일본, 시베리안 러시아에 둘러싸인 전략적 심장부에 위치한다는 사실이다.

러시아인들은 미국-한국-일본 군사 동맹이 한반도의 평화를 추진하기 보다 군사적 긴장들을 필연적으로 영속화 하리라 생각 했다. 그들은 옳았다. 오늘날 미국은 그 지역에 실제로 러시아와 중국을 둘러싸기 위한 거대하고 공격적인 군사 시설들을 세우기 위해 북한의 “위협”을 이용한다.

북한과 남한의 한국인들은 그들 나라의 또 다른 전쟁이나 영구적 분할을 원치 않는다. 그들은 외부 세력의 부정적 영향없이 평화롭게 통일되기 원한다.

북한은 누구에게나 심각한 위협이 아니다. 그들은 그 들 국민들을 제대로 먹일 수도 없다. 그들은 일본이나 미국의 도발 행위없이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다시 한번 심리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NO Base Stories of Korea at 2:2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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