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송년편지

사무국 이야기 조회 수 3834 추천 수 0 2012.01.30 18:54:37

나는 내 영혼에 말했다. 고요하라, 그리고 희망없이 기다려라.

희망은 그릇된 것을 위한 희망이 될 수 있으니. 사랑없이 기다려라.

사랑은 그릇된 것에 대한 사랑이 될 수 있으니. 아직 신앙은 존재한다.

하지만 신앙과 사랑과 희망은 모두 기다림 속에 존재한다.

생각없이 기다려라. 당신은 생각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

그러므로 어둠은 빛이 될 것이며, 고요는 춤이 될 것이다.

I said to my soul, be still, and wait without hope

For hope would be hope for the worng thing; wait without love,

For love would be love of the wrong thing; there is yet faith

But the fait...h and the love and the hope are all in the waiting.

Wait without thought, for you are not ready for thought:

So the darkness shall be the light, and the stillness the dancing.

 

T. S. Eliot <East Coker III> 1940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는 하지만 한 해의 끄트머리에 다가서면 더욱 더 실감을 하게 됩니다. 새해에 제가 하기로 했던 것들 중에서 제대로 해낸 일들이 있는가를 연말이 되면서 톺아보게 되었습니다. 연초에 세웠던 계획들은 한꺼번에 몰려다니기로 약속이나 한 듯한 일들로 인해서 잊어버리기 일쑤였고, 개인적으로 실천하기로 한 일들도 외부적인 자극이 없으면 남몰라라 팽개쳐버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언제 그런 생각을 했느냐하면서 편리한 망각 속에 묻어버린 일들이 숱하게 기억이 납니다. 이런 망각중에서 저에게 가장 심각한 망각은 아마도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적어도 2-3달에 한번씩 병원에 가서 정기검진을 받아야 하는 이식환자라는 사실일 것입니다. 물론 병원가기 2, 3일전에 병원에서 연락이 오기 때문에 병원가는 일을 빼먹지는 않습니다. 다만 병원을 다녀오고 다음 병원에 갈 때까지 이런 사실을 망각한다는 것이지요. 이식환자들은 다른 사람의 신체기관을 자신의 몸에 이식했기 때문에 이식된 신체를 병원체로 오인하여 면역체계가 공격하지 못하도록 면역억제제를 평생 먹어야 합니다. 이 면역억제제는 양날의 칼과 같아서 그 약물 농도를 잘 조절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사건들이나 생활양식에 영향을 받고 몸에 변화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면역억제제 약물 농도 조절과 기타 여러 가지 신체 상태에 따라 주치의와 만날 때마다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듣곤 합니다. 이식수술을 받고서 이 삼년동안은 정말 그 말대로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을 가지고 지키곤 했습니다. 병원에 갈 때마다 검사 결과에 따라 몇 일간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곤 했지만, 그것도 몇 년간 반복이 되면서 내성이 생긴 듯 합니다. 내성을 키우는데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것을 무엇보다도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신기하게도 이라는 것은 눈 사람을 만드는 눈뭉치와 같아서 움직일 때마다 더 많은 일들이 생겨나곤 한다는 것입니다. 이식수술 초반기에는 몸을 사리면서 움직였지만, 조금만 더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반복하며 움직이다보니 어느덧 할 수 있는 일들은 해야한다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 보이는 모든 일들이 다 긴급한 일들로만 보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정말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망각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몸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몸은 항상성이 있어서 외부에서 생겨나는 어지간한 변화들은 완충시키는 작용을 하면서 평형을 유지시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두고 변화들이 쌓이게 되면 몸 자체가 변화되어 다른 형태의 균형을 이루게되면 이전의 몸상태로 돌아가기 위해서 변화된 시간만큼의 노력이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건강한 사람들에게 몸상태의 변화를 알려주는 징후는 병원에 가야만하는 상태이고, 이때 주의하게 되면 다시 건강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이 항상성을 유지하는 완충지대의 범위가 넓어서 왠만한 변화에도 약간만 다시 주의를 기울이면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게 되지만, 이식환자들에게는 이 완충지대의 범위가 좁아 아차하는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프게 되면서 깨닫게 된 가장 커다란 것중에 하나가 바로 이 몸의 항상성과 변화였는데, 올 한해를 돌아보면서는 그것이 인간이 가진 기억의 망각과 어떤 조응을 하는지를 새삼스럽게 재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2시간씩 금식을 하면서 약을 먹는 행위도 그것이 일상이 되면 특별한 문제 의식이 없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사회를 유지하는 체계의 힘들이 서서히 지속적으로 저의 일상세계를 장악해서 체계가 유지되는 방식으로 일상 생활을 다시 재구축해버린 것이지요. 어떤 일을 해야만 한다는 요청들은 끊임없이 저를 자극하고, 저의 몸을 고려하면서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은 가끔 드물게 생각이 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삶도 이렇게 구성되고 재구성 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호흡임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면서 내가 호흡을 하고 있다는 의식을 하지 못하듯이 말입니다. 더 나아가 기독교인으로서 저의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과의 관계임에도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저는 하나님이 없는 듯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아직도 저를 휘어잡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도 빠르게 그것을 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치게 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저를 닦달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나온 1년을 되돌아보면 고요한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경청하는 삶을 살아가겠다는 그 약속을 얼마나 자주 그리고 지속적으로 망각하며 살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제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섣부른 희망보다는, 제가 무엇을 사랑한다는 그릇된 것에 대한 사랑보다는 하나님으로부터 울려나오는 소리에 공명할 수 있도록 제 자신을 더 비워내고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새해에는 제가 해야할 일을 어떻게 인식하던지 간에 가장 긴급하고 중요한 것은 고요가운데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임을 잊지 않는 삶을 살아가도록 일상생활을 조형하도록 하겠습니다. 고요와 경청에서 돌아서는 것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삶으로 미끄러지는 물매임을 잊지 않도록 함께 기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새로운 해에는 고요한 가운데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이런 삶을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나눌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2011년을 마감하면서

김오성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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