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송년편지입니다.

사무국 이야기 조회 수 8955 추천 수 0 2008.09.19 17:45:16

모든 삶의 과정은 영원하지 않다.

견딜 수 없는 슬픔, 고통, 기쁨, 영광과 오욕의 순간도

어차피 지나가게 마련이다.

모든 것이 회생하는 봄에 새삼 생명을 생각해 본다.

생명이 있는 한,

이 고달픈 질곡의 삶 속에도 희망은 있다.

-장영희, ‘문학의 숲을 거닐다’ 중에서-

 

이 세상 모든 만물이 빛의 고통이 없으면 제 색깔을 낼 수 없듯이, 이 세상을 사는 우리도 고통이 없으면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만물이 색채를 지닌다는 것은 바로 고통의 빛이 있다는 증거이며,

제 사람에 고통이 있다는 것은 바로 제가 인간으로서 건강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증거이자 증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호승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중에서-

 

 

이 땅에 모든 고통받는 이들에게 희망의 빛으로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2007년 성탄절이 저에게는 그 어떤 태어남의 날들보다 더욱 각별하게 다가왔습니다. 이 탄생의 계절에 저는 생명의 신비는 지난한 고통과 심연을 지나서야 그 참다운 빛을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장이식 수술 기간중에 병원으로 문병을 와주셨던, 쾌유를 기원하는 문자를 보내주셨던, 그리고 병원비와 치료비를 위해 십시일반으로 많은 도움을 주셨던 선배 목사님들과 벗들, 후배 동역자들, KSCF의 선배회와 동문 모임들, 그리고 저의 완쾌를 위하여 원근 각처에서 흩어져 기도를 해주는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특히나 제가 얼굴 한번도 뵙지 못했던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신 것을 알게 되고는 정말 뭐라고 인사를 해드려야하는지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깨닫게 된 것중에 하나는 육체의 고통은 단지 고통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지난한 삶의 시간들은 그 시간을 경과하는 사람에게 어떠한 삶의 경지를 살며시 열어보여준다는 사실입니다. 눈밝은 사람들이라면 육체의 고통을 경과하지 않고도 깨달을 수 있는 것일 터이지만, 저는 이런 과정을 통하여서 겨우 삶의 진경을 어렴풋하게 감지하는 것 같습니다. 2005년 성탄예배 이후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제 일상생활중에 빼놓을 수 없는 시간들입니다. 제 몸을 돌아보는 이 시간이 단지 신체적인 건강의 문제만을 생각하는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말기 신부전증을 판정받던 시간들, 투석을 받기 위해서 일주일에 두 세차례 4시간씩 혈액 투석기 옆에 누워있던 시간들, 신장 교환이식을 준비하기 위해 검사받던 시간들, 수술대 위의 시간들, 수술후의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끊임없이 병원을 반복해서 다녀야만 하는 시간들, 그리고 평생토록 하루에 몇 차례씩 잊어먹지 않고 약을 먹어야 하는 시간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정말 무척 많은 시간들을 제 몸과 씨름하면서 보냈고, 보내야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간들이 오롯하게 빛나는 생명의 빛을 감지하는 섬세한 삶의 촉수를 길러내는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삶과 죽음이, 건강과 병듦이, 기쁨과 슬픔이, 그리고 저 반대편에 위치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들이 아니라 바로 이웃해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생물학적인 삶에 연연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살아가면서 선택해야 할 것은 나의 삶을 통해서 어떤 무늬를 만들어야 하고, 어떤 파동들을 주변에 전달하고 전달받으면서 그렇게 공명하면 살아야하는가를 조금은 더 확실하게 감지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식수술을 통해서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이식된 신장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제 몸의 면역 활동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면역 체계는 내 몸이 생존을 위해 외부의 것이 들어오게 되면 이것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면역 체계를 억제해야만 한다는 것은 오히려 생명을 유지하기 또다른 차원임을 느끼면서, 어쩌면 내 몸의 체계만이 아니라 우리가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활동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이 되곤 합니다. 그래서 타자를 받아들인다는 것, 다른 것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목숨을 건 도약’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받아들이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목숨을 건 도약이고, 그리고 그 과정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나의 전 삶을 통해서 지속되어져야 하는 과정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늘 이러한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겠지요.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또한 죽어야 하는 과정이 포함된 일이라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오롯하게 모든 것의 희망이며 생명이 되시는 그분을 드러나게 하는 일이 우리의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제가 아프면서 정말 어떻게 이런 일들을 하나님이 허락하셨는지를 때로는 원망하면서, 때로는 흔들리면서 묻고 물었었습니다. 하지만 요사이에는 이런 일을 허락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생명들의 고통속에 참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희망과 생명을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제야 겨우 눈을 뜨게 되면서 조금씩 보게 되는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마 제가 평생 살아가면서 깨우치고 또 깨우쳐야 할 화두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걸어가면서 더욱 깊어지는 질문들을 제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조금씩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함께 협력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007년 이땅에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김오성 드림.


김오성

2008.09.19 17:47:26
*.160.136.28

작년에 보냈던 편지를 1년이 다 지나가는 시점에 올려달라는 요청이 있더군요. 그래서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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