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하장에 함께 보내는 아주 자그마한 십자가의 이름은 ‘눈물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의 본래 이름이 ‘눈물 십자가’는 아닙니다. 이 십자가의 유래를 처음 듣게된 그 날, 이 십자가를 들여다보면서 ‘눈물 십자가’라는 이름이 떠올라 그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십자가의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된 것은 3년전 아시아 태평양지역 각 나라의 기독학생회 총무들이 모여 웤샾을 진행할 때였습니다. 이 웤샾에 세계기독학생회 총무가 참석해서 이 십자가를 나누어주면서 어떻게 이 십자가가 만들어졌는지를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당시 독일 기독학생회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면서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독일인으로서 어쩔 수 없이 군인으로서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지만, 참전하게 된 다른 나라 기독학생들을 죽이게 될까봐 걱정한 것입니다. 이 딜레마 상황에서 그들이 생각해낸 것이 바로 이 십자가였습니다. 이 자그마한 십자가를 만들어 다른 나라의 기독학생들에게 나누어주고 각 나라의 기독학생들이 군복에 이 십자가를 꽂고 참전하도록 요청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쟁터에 마주치게 될 때 이 십자가를 꽂고 있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해치지 않기로 했던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만들어진 십자가중에서 남아있는 것을 세계기독학생회 총연맹을 통하여 각 나라에 전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십자가를 생각해낸 독일 기독학생들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기독학생회는 그들의 선배였던 본 회퍼와 신학자 칼 바르트의 큰 영향을 받고 있었습니다. 독일제국교회의 신학에 반대하는 고백교회의 전통속에서 신앙을 실천하는 전통을 세워나가고 있던 독일 기독학생회는 전쟁에의 참전과 자신들의 신앙 실천이라는 딜레마에서 깊은 시름을 하였던 것이 아닐까요. 막다른 절벽과 같은 상황에서 독일 기독학생들은 전쟁에 참전하게 되더라도 같은 신앙을 고백했던 기독학생들끼리의 살인 행위만은 막아보자는 마지막 지혜를 짜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군복 한 귀퉁이에 이 작은 십자가를 꽂고 참전하기를 요청했던 독일 기독학생들은 제국의 욕망으로 살육이 자행되는 전쟁터에서 그들이 할 수 있던 한 가지 평화를 만들어 내고자하던 저항의 몸짓이었을 것입니다. 이 십자가를 전달받으면서 저는 이것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던 독일 기독학생들의 ‘눈물 한 방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십자가를 생각해냈던 독일의 기독학생들의 마음이 1만킬로미터라는 공간적 거리와 반세기라는 시간적 거리를 뛰어넘어 저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죽이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상황이 비단 전쟁터만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 한국의 대학생들의 현실을 묘사한 ‘88만원 세대’의 서문을 보면 그 저자들이 책 제목을 정하면서 고려했던 제목중에 하나가 ‘배틀로얄 세대’였습니다. ‘배틀로얄’이라는 말은 몇해전에 상영된 일본영화의 제목입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무인도라는 공간속에 학생들을 풀어놓고 서로 무기를 들고 싸우게 해서 살아남는 단 한 사람만을 자기의 집으로 귀환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배틀로얄’은 생존을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 하는 경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88만원 세대’의 저자들이 보기에는 오늘 한국 대학생들의 현실이 바로 이런 ‘배틀로얄’ 게임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이 현실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수사적인 과장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장이 그렇게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닙니다. 대학이 진리를 추구하는 상아탑이라는 말은 이미 오래전에 용도폐기되어 버리고 취업을 위한 전문기술학원으로 변해버린 것 같습니다. 꿈과 낭만을 가지고 대학문을 들어선 대학 신입생들부터 어떻게 하면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을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스펙’이라는 말은 Specification의 단어에서 나온 말로 ‘학점, 인턴쉽, 어학연수, 사회봉사, 자격증’ 등을 말하며 스펙을 쌓는다는 것은 이러한 대학생 때 활동을 통해 구직에 도움이 되는 것을 말한다. 스펙 쌓기에 골몰하는 대학생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이나, 진리에의 탐구나, 취미나 여가활동 등은 한가한 고담준론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경제적인 여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여간해서는 제대로된 스펙을 쌓기가 불가능한 것이 현실입니다. 또 계속해서 치솟아 오르는 대학등록금은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학생들을 신용불량자로 만들어버리고 있습니다. ‘88만원 세대’나 ‘배틀로얄 세대’와 같은 말은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그리 과장된 표현은 아닐 것입니다. 세계기독학생회 총연맹 총무에게 이 작은 십자가를 전달받으면서 한국 대학생들의 현실과 참전하던 독일 기독학생들의 서로 겹쳐졌다고 하면 과언일까요?

이런 현실에서 오늘 한국의 기독학생의 현실을 보면서 과연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가지 않고, 오히려 그 흐름을 타고 넘어갈 수 있는 대안적 희망은 무엇일까요? 한국의 현대사를 되돌아보면 어떤 시대에나 그 시대만이 가지는 고유한 과제들이 있었고, 그 과제들은 그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었습니다. 매 시기마다 기독학생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과제를 붙잡고 씨름했으며, 또 이런 기독학생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격려하며, 함께 해준 신앙의 선배들이 있었기에 어려운 현실에서도 그 과제를 타고 넘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연하장과 함께 이 작은 십자가를 보내드리는 것은 우리 기독학생들이 그들에게 맡겨진 과제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격려와 기도를 부탁드리기 위함입니다. 어느 시기나 기독학생들이 자기의 맡은 바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독학생들을 염려하고 후원하던 수많은 기도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기도의 손길을 여러분에게 부탁드립니다. 이 작은 십자가를 볼 때마다 가장 짧은 기도 한 문장으로 기독학생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추운 계절일수록 옆에 서있는 사람의 온기가 더욱 절실하고 애틋하게 느껴지듯이, 여러분이 나누어주는 따뜻함을 통해 새해에는 저희 기독학생들이 그 따뜻함을 전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2008년 이 땅에 희망의 빛으로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며

김오성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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