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을 생각하는 시 모음> 정연복의 인생살이의 맛

 

+ 인생살이의 맛

 

식품용어 사전에서

단맛, 신맛, 쓴맛, 짠맛, 감칠맛은

 

다섯 가지

기본 맛으로 정의된다.

 

식품의 맛에 대한 이 정의는

인생살이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단맛뿐이 아니라

신맛, 쓴맛, 짠맛도 가미되어야

 

식품이든 인생이든 맛깔스러운

감칠맛이 날 수 있다.

 

단맛만 갖고서는

인생살이의 맛이 나지 않는다

 

신맛도 짠맛도

실패와 좌절의 쓴맛도 골고루 섞여야

 

감칠맛이 나는

제대로 된 인생살이가 되는 거다.

 

 

+ 밥맛, 살맛

 

하루 세 번 밥을 먹으면서

밥맛이 전혀 없으면

 

그건 삶의 의욕을

깡그리 잃었다는 얘기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살맛이 느껴지지 않으면

 

그건 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니다.

 

밥을 먹는 일도 행복하고

살아가는 일도 신바람 나면서

 

단 하루를 살아도

재밌게 즐겁게 살자.

 

모두들 가난했던

어릴 적 학교에서 소풍 가던 날

 

뭐든지 맛있고 세상이 밝아 보였던

그날 하루같이.

 

 

+ 아내는 밥맛이다

 

쥐 죽은 듯

적막이 흐르는 집에서

 

식욕이 당기지 않아

두세 시까지 미루다가

 

갑자기 허기가 몰려오면

먹는 둥 마는 둥

 

나 홀로 먹는 점심은

늘 맛없다

 

밥알이 아니라

모래알을 씹는 느낌이다.

 

저녁 늦게 퇴근하고

배고파 돌아온 아내와

 

소곤소곤 이야기꽃 피우고

눈맞춤도 하면서

 

함께 먹는 밥은 반찬이

별것 없어도 맛있다

 

뭐든 참 복스럽게 먹는

아내의 모습이 보기 좋고

 

쓸쓸하지 않은 밥상인 게

무엇보다도 좋다.

 

이래저래 아내는

나의 밥맛이다.

 

 

+ 군고구마

 

찐 고구마도

나름 맛있지만

 

군고구마의 맛에는

미치지 못한다.

 

똑같은 고구마라도

불에 들어갔다 나와야

 

훨씬 더 향기롭고

깊은 맛이 나는 거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고통과 시련의 불을 통과해야

명품 인생이 생겨난다.

 

 

+ 묵은지 인생

 

김치가 묵은지 되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몇 년이고 오래오래

폭 익히는 것.

 

김치를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을 만큼

 

조금도 안달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는 것.

 

묵은지같이 깊은 맛의

삶이 생겨나기까지는

 

몇 배나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거다.

 

 

+ 오이지

 

초록 오이를 소금물에

폭 담근 다음

 

돌멩이같이 무거운 걸로

며칠 꼭 눌러놓으면

 

노르스름한 빛깔의

맛있는 오이지가 완성된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퍽 힘들게 느껴지고

 

가슴이 뭔가에 짓눌린 듯

답답하고 아플 때에도

 

너무 상심하지 말자

생활의 활력을 지켜가자.

 

돌멩이에 눌려 오히려

노릇노릇 익는 오이같이

 

고통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삶의 깊이와 맛이 더해지니까.

 

 

+ 동지 팥죽

 

어릴 적

동짓날이면

 

외할머니가 정성껏

만들어 주신

 

찹쌀을 동글동글 빚은

하얀 새알심이 든

 

불그스름한 팥죽 맛

지금도 혀끝에 남아 있다.

 

계절은 돌고 돌아

해마다 이맘때면

 

동짓날은

어김없이 찾아오건만

 

외할머니는 이제

내 곁에 없네.

 

억만금을 주고도

사먹을 수 없어

 

맘속 추억으로만

되새김질하는

 

겨울 추위도

잠시 잊게 했던

 

외할머니의 뜨거웠던

동지 팥죽 한 그릇.

 

* 정연복 시인 공식 블로그: http://blog.naver.com/yeunbok5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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