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바벨과 오순절

사무국 이야기 조회 수 17157 추천 수 0 2008.05.27 11:48:21

현대 한국사회 운동에서 일어난 일들을 바벨의 사건과 견주어 생각하는 것은 기독학생운동과 에큐메니칼 운동 진영에는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바벨탑의 붕괴는 인간에게 징벌이었을까, 아니면 은혜였을까? 바벨 사건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방언을 하나님의 권위에 대항한 인간들에 대한 징벌의 사건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바벨탑 사건에 대하여 전통적 해석과는 다른 해석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벨탑을 건설하는 제국의 질서를 형성하는 것은 한 가지 언어로 통일된 인간의 언어였고, 이 동일성의 언어가 독재와 전제를 작동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차이와 다름 혹은 타자를 인정하지 않는 동일성의 언어는 힘을 집결시키는 깃발이였다. 하지만 "괴물을 상대하다가 괴물이 되어버렸다"는 고백은 동일성의 언어가 만들어내는 거울 효과를 그려내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벨탑 붕괴 이후 방언은 오히려 인간의 차이들을 들어내고, 다름을 알아차릴 수 있는 성찰의 근원적 사건임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한국사회의 형식적 민주화는 이후 한국 사회에 숨겨져있던 온갖 형태의 차이와 다름을 들어내고 표현할 수 있는 차이의 언어를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차이와 다름은 이분법적인 도구로 바라보던 세계에 다채로운 색깔의 가능성과 적어도 흑과 백만이 아니라 흑과 백 사이에 회색 진영이 존재함을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흑과 백 사이의 그라데이션! 작은 이야기들의 복권과 그 해방적/비판적 효과.

기독학생운동은 지난 십여년간 흑과 백 사이에 존재하는 농담(濃淡)을 탐색해왔다. 그 과정에서 각자의 색깔을 얻기도 하였으며, 더욱 깊숙한 영역으로의 진입을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이전 시기에 우리를 움직여오던 관성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다름'을 곧잘 '틀림'으로 받아들이곤 하였다. 또한 새롭게 열리는 자기 영역에 몰두하느라 내 주변의 사람들이 어느 위치에 서있는지도 모르고 달려나가기도 하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현장 활동의 공간에서 만나기는 하지만, 깊은 만남도 대화도 없는 자기만의 독백으로 변화되어 버렸다.

우리가 쉴 새 없이 지절거리는 작은 이야기들의 해방적/비판적 효과는 그것이 자기만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동안 늘 그렇듯이 또 하나의 게토를 만들며, 그리고 그 게토 속에서 자기동일성의 언어/제국의 언어로 그치고 말아 버렸다.

오순절 사건은 바벨의 사건이 만들어낸 이중적인 동일성을 뚫어내고 있다. 온갖 차이를 무시하는 제국의 언어도 자기 영역에서만 기능하는 게토의 언어도 아닌 제국과 게토를 넘어서는 소통을 오순절 사건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불어가는지 모르는 성령의 사건은 제국과 게토를 넘어서는 대안적인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기독학생운동은 그 운동의 본래의 성격인 소통과 대화의 힘을 발휘해야 할 때이다. 차이와 다름의 긍정은 그것이 소통을 전제로 할 때만에 가능한 것이며, 그 소통을 통해 삶의 세계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맘몬의 힘을 성찰하며 이를 넘어서는 대안적인 삶의 실천을 보여줄 때 가능한 것이다. 지난 시기, 우리는 맘몬의 힘을 넘어서기 위하여 사회과학적인 힘과 상상력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근대과학적인 담론 체계가 억압하는 수많은 작은 이야기들이 있으며, 모든 것을 가장 객관적으로 명확히 보고자 한다는 근대과학적인 방법론 자체가 가지는 맹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후 근대과학적 담론을 넘어서는 작은 이야기들이 거대/메타 담론의 틈새를 비집고 올라서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작은 이야기들은 그동안 잊고 살았던 일상세계의 성찰을 가능하게 하였다는 점은 주목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들과 더불어 우리는 자본을 넘어서는 상상력이라는 이름하에 신비주의와 게토화된 소공체주의(에세네파)로 너무나 쉽게 채색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할 것이다.

과거의 기독학생운동은 당면한 한국사회 문제의 해결에 치중하였고, 또 자신들의 운동의 결과에 따라 한국사회에 급격한 변동을 하게 될 것이라는 종말론적 열정에 가득차 있었다. 그렇기에 한국사회의 변혁을 위해 자신들의 모든 것을 헌신하며 하나님 나라 운동에 자신을 내던졌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온 몸을 던지는 실천이 우리 사회의 변화를 가능하게 한 중요한 원동력이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실천이 변화된 환경에서도 여전히 유일한 혹은 유효한 실천인가는 다양한 각도에서 탐색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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