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를 생각하는 시 모음> 정연복의 진리

 

+ 진리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고

 

불길은 아래에서

위로 치솟는다.

 

겸손한 물이

교만한 불을 끈다

 

깊이가

높이를 이긴다.

 

 

+ 깊이

 

뿌리 깊은 나무는

강풍도 태풍도 견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깊이의 힘이다.

 

깊이 없는 높음은

불안하기 짝이 없는 것

 

그런 높음은

언젠가 힘없이 무너진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많이 더디더라도

깊이에 묵묵히 충실하기

 

높이는 좀 낮추더라도

되도록 깊이에 집중하기

 

성급히 꽃 피우려 하지 말고

뿌리를 튼튼히 다지기

 

이것 말고 달리

인생살이의 묘수는 없으리.

 

 

+ 슬픔의 강

 

가슴

한가운데

 

보이지 않는

슬픔의 강 하나

 

흐르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 없으리.

 

사람이 사람을

참 사랑한다는 것은

 

슬픔의 강이

슬픔의 강과 만나

 

서로를 보듬고

따뜻이 안아주는 일

 

커다란 산이 가로막아도

끊기지 않고

 

깊이깊이 흘러

슬픔의 바다에서 만나는 일.

 

 

+ 물의 길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흘러간다

 

낮은 데서

더 낮은 데로 흘러간다.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곳에서는

 

한동안

숨 고르며 머무른다.

 

내가 찰 만큼 찼다 싶으면

허리띠 얼른 동여매고

 

다시 또 낮은 데를 찾아

기쁘게 흘러간다.

 

낮아지니까

끊임없이 낮아지니까

 

마침내 평화의 바다에

다다른다.

 

겸손하고도 굳센

물의 길

 

끝없이 깊이를 찾아가는

아름다운 길.

 

 

+ 깊이의 기도

 

높이를 우러르는 요즘 세상에서

저는 별로 인기가 없어요

 

아파트도 높을수록 전망이 좋고

프리미엄까지 붙는다고 해요

 

교회당도 우뚝 솟아 있어야

교인들이 많이 몰려온다고 해요.

 

하지만 과연 이게

옳은 일인지 의문이 들어요

 

전망 좋은 고층 아파트에 산다고

행복이 보장되는 건 아니잖아요

 

저층의 작은 아파트에 살아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어요

 

가족끼리 깊은 신뢰와 사랑이 있고

깊은 대화가 오갈 수 있다면 말이에요

 

낮고 초라한 예배당에서도

하느님을 만날 수 있어요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깊고 신실한 믿음이 있으면 말이죠.

 

주님!

 

높이를 우선하고 저를 우습게 보는

잘못된 세상 풍조를 바꿔주세요

 

꽃이 피고 나무가 잘 자라려면

땅 속의 보이지 않는 뿌리가 필요하듯

 

개인의 삶이든 사회든 국가든

깊이에 관심 갖게 해주세요


* 정연복 시인 공식 블로그: http://blog.naver.com/yeunbok5453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794 바람예수글 작은 꽃의 기도 바람예수 2018-04-19 51
13793 바람예수글 <4·19혁명 시 모음>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 외 바람예수 2018-04-19 113
13792 바람예수글 마음의 고요 바람예수 2018-04-19 62
13791 바람예수글 고요 바람예수 2018-04-19 58
13790 바람예수글 <토끼와 아내 시 모음> 정연복의 ‘아내와 토끼’ 외 바람예수 2018-04-19 79
13789 바람예수글 <자기 사랑 시 모음> 정연복의 ‘나를 사랑하는 시’ 외 바람예수 2018-04-18 114
13788 바람예수글 자기 사랑 바람예수 2018-04-18 59
13787 바람예수글 <연둣빛을 노래하는 시 모음> 정연복의 ‘색깔론’ 외 바람예수 2018-04-18 73
13786 바람예수글 자기만큼 바람예수 2018-04-18 53
13785 바람예수글 <품속 시 모음> 정연복의 ‘하늘 품속 산’ 외 바람예수 2018-04-18 77
13784 바람예수글 <솜사탕 시 모음> 정연복의 ‘젊음의 솜사탕’ 외 바람예수 2018-04-18 67
13783 바람예수글 애인에게 바람예수 2018-04-18 64
13782 바람예수글 솜사탕의 노래 바람예수 2018-04-18 62
13781 바람예수글 <라일락 향기 시 모음> 정연복의 ‘라일락 향기’ 외 바람예수 2018-04-18 50
13780 바람예수글 <숲을 노래하는 시 모음> 정연복의 ‘숲으로 가자’ 외 바람예수 2018-04-18 68
13779 바람예수글 <목련 새 시 모음> 정연복의 ‘목련 새’ 외 바람예수 2018-04-18 56
13778 바람예수글 목련 새 바람예수 2018-04-18 53
13777 바람예수글 숲으로 가자 바람예수 2018-04-18 57
13776 바람예수글 선물 바람예수 2018-04-17 57
13775 바람예수글 <길노래 시 모음> 정연복의 ‘길노래’ 외 바람예수 2018-04-17 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