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 시 모음>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 외 

== 껍데기는 가라 ==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신동엽·시인, 1930-1969)


== 4월의 꽃 == 

홀로 피는 꽃은 그저 꽃이지만
와르르 몰려
숨 넘어가듯
엉겨 피어 쌓는 저 사건 뭉치들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벚꽃 철쭉들
저 집합의 무리는
그저 꽃이 아니다
우루루 몰려 몰려
뜻 맞추어 무슨 결의라도 하듯이
그래 좋다 한마음으로 왁자히
필 때까지 피어보는
서럽고 억울한 4월의 혼령들
잠시 이승에 불러모아
한번은 화끈하게
환생의 잔치를 베풀게 하는
신이 벌이는 4월의 이벤트


(신달자·시인, 1943-)


== 4월의 불꽃 == 

그가 돌아왔다
뜨거운 미소로 창을 두드리며
나를 흔들어 깨웠다.

4·19 민주의거
영원한 민주의 불꽃
4월 진달래 삼천리 흐드러지게
붉게 꽃피우리라.

(장수남·시인, 1943-)


== 4월 == 

언제 우레 소리 그쳤던가,
문득 내다보면
4월이 거기 있어라.
우르르 우르르
빈 가슴 울리던 격정은 자고
언제 먹구름 개었던가.
문득 내다보면
푸르게 빛나는 강물,
4월은 거기 있어라.
젊은 날은 또 얼마나 괴로웠던가.
열병의 뜨거운 입술이
꽃잎으로 벙그는 4월.
눈뜨면 문득
너는 한 송이 목련인 것을,
누가 이별을 서럽다고 했던가.
우르르 우르르 빈 가슴 울리던 격정은 자고
돌아보면 문득
사방은 눈부시게 푸르른 강물.

(오세영·시인, 1942-) 


== 부활 - 4월에 ==

피 묻어 선연한 새벽 낯빛들
찢긴 가슴 펄럭여
그리운 그 얼굴들 그리워
밤이면 밤마다 잠 못 이루고
날이면 날마다 걷던 걸음
우뚝우뚝 멈춰 서는
소쩍새 길길이 울어 넘는
삼사 오월 저 고갯길
펄펄 죽은 몸 펄펄 살아
잡는 손 풀뿌리 뿌리치며
한 많은 고개
산, 산 넘고 물, 물 건너
훌훌 단숨에 타는 가슴
불길로 오라
못 견디게 그리운
새벽 낯빛 그 고운 얼굴들.


(김용택·시인, 1948-)


== 4월에 == 

겨울이 다 가도
봄을 기다리지 않았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
깡깡한 얼음덩어리 속에서
불쑥 몸을 돌려
꽃으로 변신하고 싶지도 않았다.
가끔 깨어져 날카롭게 일어서는
동지들의 아름다움이
심장을 쩡쩡 울린다.
잎 트고 어지러이 봄꽃들 피어나도
얼음은 얼음
영하 20도의
차갑고 분명한 정신으로
오월을 맞는다.


(채호기·시인, 1957-)


== 4·19 탑 앞에서 ==

우리 여기 이 작은 무덤들 앞에 눈감고 서노니
그 4월 굴 속 같은 원시림을 태운 거룩한 불이여
어느 돌에도 새길 수 없는 그 함성의 그 얼굴들
해 뜨는 동쪽 어디쯤 고요한 바다로 누웠다가
이리도 소리없이 물결지어 물결지어 밀려오고 있는가
밀려와, 그날의 피묻은 이야기 신화처럼 묻힐 수 없어
그때 그 젊음으로 다 피우지 못한 아쉬운 꽃
노오란 개나리, 하얀 목련, 붉고 붉은 진달래
이 땅에 지금 저렇게 가득히 피우고 있는가
오 죽어서도 차마 아주 떠날 수 없는 넋들이여
그대들의 굳고 빛나는 정신 거대한 산이 되어
높은 종교처럼 한없이 우러러 보이네
우리 여기 이 작은 무덤들 앞에 눈감고 서노니


(이청화·승려 시인, 1944-)


== 4월과 5월 ==

4월과 5월 사이, 사랑아
봄빛보다 찬란하게 사라져간 너를 그린다
그린 듯이 그린 듯이
너는 라일락 꽃잎 속에 숨어서
라일락 꽃잎 같은 얼굴로 웃고 있지만

4월과 5월 사이, 사랑아
너는 나를 그리며 더 큰 웃음을 웃고 있지만
네가 던진 함성도 돌멩이도 꿈 밖에 지고
모호한 안개, 모호한 슬픔 속으로
저 첫새벽의 단꿈도 사라지는 것을

사라지는 것은 언제나 사라진다
4월과 5월 사이, 사랑아
세월의 앙금처럼 가라앉아
그것이 거대한 나무의 뿌리가 되고
그 뿌리 속에 묻어 둔 불씨가 되는 너를 그린다

그린 듯이 그린 듯이
너는 라일락 꽃잎 속에 숨어서
라일락 꽃잎 같은 얼굴로 웃고 있지만
파아란 보랏빛 얼굴로 웃고 있지만


(박정만·시인, 1946-1988)


== 아! 4월의 광장에 - 4·19의 시 ==

태초의 신비가 고개를 들어
역사를 시작하던 그날
새싹으로 뒤덮인 광장 위에
어린 외침들이 있었다.

부정과 독재타도
하나를 위해 모두를 건 부르짖음은
주체와 當爲로 뭉친
성난 파도의 함성.

반도의 남단 마산에서
어린 유혈2)이 海水에 엉켰고
연기로 가득 찬 거리를
젊은 분노들은 달렸다.

그 사월의 이른 아침부터
사색하는 싹들은
학원에서
일터에서
모두 일어났다
중앙청 광장에서
경무대 골목에서
세종로에서
온 방방곡곡에서...
이렇게 사월은
푸르름 속에서 진통하고 있었다.

잇닿는 행렬의 절정에서
이성을 잃은 變異가
어린 꽃들을 휘감았다
불의에 항거하는
잎들이 하나 둘 떨어졌다.
영영 푸른 하늘을 등지고
다 울부짖지도 못한 채
조국의 기둥들이 무너져갔다.

해마다
이 아픈 계절이 오면
어린 피 흘려 쓰러진 자리에 서서
그대들을 기리는 영광의 빛을
오늘도 내일도 밝히리라.

아! 사월의 광장에
다시 푸르름이 물들면
몸과 마음은
활활 타던 가슴속의 부르짖음을 기억한다.


(이풍호·시인, 충남 예산 출생)
1) 4.19 학생의거일: 이승만 독재정권에 대항하여 일어난 학생의거일(1960년 4월 19일).
2) 어린 유혈: 金朱烈군(당시 17세)의 참혹한 주검. 


== 그대 4월이여 - 4·19혁명 28주년 기념시 ==

4·19 나던 이듬해 나는 세상에 태어났다
한글을 익히자마자 국민교육헌장을 외던,
10월유신 노래 부르며 발맞추어 소풍 가던,
불운한 세대 나는,

그대가 먼 옛날의 전설인 줄 알았었다
광장의 젊은 함성도,
자유의 이름으로 나부끼던 깃발도,
총알 후벼판 두개골도,
[사상계] 화보 속의 낭자한 자국도,
한 권의 낡은 역사책이거나
그냥 쓸쓸한 기념탑인 줄 알았었다

4월이여
첫사랑 민주주의여

나는 보았다
그대가 저 광주 5월을 키워내는 것을,
그대가 군화발을 딛고 일어서는 것을,
그대가 도청을 향해 전진하는 것을,
그대가 시대의 가장 어두운 골짜기에서 빛나는 것을,
그리하여
그대가 마침내 6월도 쟁취하는 것을

역사 아닌 4월이여
우리들 핏줄 속에 흐르는 현실이여

진정 4월이면 하나하나 돌아올 것이다
서럽게 죽은 귀신은 사랑으로,
창녀는 숫처녀로,
양심수는 가족 곁으로,
병든 상처는 새 살로,
돌아와 해방의 물결로 출렁일 것이다


(안도현·시인, 1961-)


== 지금은 아직 平靜한 시간이 아니다
-4·19 45주년에 ==

우리는 지금 제법 평정한 시간 속에 침잠해 있다
비교적 목적을 성취한 양 안정되고 느긋하다
그러나 이 모습은 아직 진정한 우리 모습이 아니다
저 45년 전 지축 흔든 함성은 값진 성찰이고 용기였다
비로소 주권재민 의식 되살아나 희망이 되었다
가슴마다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목표가 새겨졌다
일사천리 그 목표는 쉽게 우리 손에 들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어쩌랴 그것은 서둘러도 잡히는 게 아니었다
지금 눈으로 자세히 보면 분명히 보이는 게 있다
아직 우리 앞에는 똬리 튼 무슨 괴물 같은
불안한 성벽 험난하게 날 세우고 버티고 있다
무슨 중무장한 거함처럼 육중하게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이룬 제법 든든하게 여기는 자긍심으로
과감하게 허물 것은 허물고 치울 것은 치우는
자신 있는 발걸음 내딛어야 정의고 용기이다
그러나 가로막는 차단 막은 완강하고 견고하다
섣불리 나서지 말라는 경계의 손짓이 강경하다
자칫 설익은 용기는 되려 방해를 부르는 만용임을
아직은 자세 가다듬는 조신함이 지혜임을 깨우친다
우리가 가진 재주, 우리가 이룩하고 획득한 것,
우리가 자부심 느끼는 것, 우리가 무게 잡고 사는 것
아직은 별것 아닌, 미진하고 보잘것없음을 알게 한다
우리가 희망하는 목표는 결코 순탄하지 않음을
그리고 거기에는 어쩌면 아득하고 침침하고
안개 같은 장막 드리운 일상의 현실임을 알게 된다
다시금 그날의 함성에서 잔잔히 다가서는 울림은
결코 허술하고 만만하지 않은 경고임을 안다
그날 불붙은 주권재민의 기치는 엄숙하고
인류가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는 진리임을 되새긴다
우리 한반도 지상 명제인 저 숙원의 통일은
이직도 진행형 과정이라는 사실은 명료하다
꽤 세월 흘렀지만 우리는 지금 평정한 시간이 아니다
정신 새롭게 가다듬어 우리 모두 느슨한 자신을
거듭 새롭게 다그쳐야 그날이 열림을 명심한다


(오하룡·시인, 1940-)

* 엮은이: 정연복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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