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시 모음> 정연복의 손님

 

+ 손님

 

세상이라는 여인숙에

손님으로 와서

 

잠시 머물다가

총총 떠나가야 하네.

 

영영 살 집이 아니라

아무 때고 떠날 집이기에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없을수록 더 좋네.

 

세상이 날 어떻게 대하든

불평할 것도 하나 없네

 

어차피 나는 손님인 걸

주인 행세는 하지 말아야지.

 

 

+ 손님

 

살아가면서 만나는

어떠한 기쁨과 슬픔도

 

나의 생을 찾아오는

더없이 귀한 손님으로 알고

 

두 손과 가슴 활짝 벌려

반갑게 맞으리.

 

드넓은 지상의

작고 볼품없는 나의 존재

 

한 이름 없는 여인숙 같은

내 생명의 집을

 

멀리에서 애써 찾아와 준

기쁨과 슬픔 모두에게

 

내 누추한 집의 가장 따스한

아랫목 아낌없이 내어주리

 

푹 눌러앉았다 가도 괜찮다고

진심으로 말하리.

 

 

+ 봄맞이

 

멀리서 귀한 손님이

찾아오는데

 

물끄러미 먼 산만

바라보고 있으면 안 되지

 

집안 대청소를 하고

옷매무새도 가다듬어야지.

 

저만치 반가운 봄이

다가오는데

 

남의 일인 양

꼼짝 않고 있으면 안 되지

 

겨우내 마음속 쌓인 먼지

말끔히 털어내야지.

 

나를 찾아서

나의 행복을 위해 오는 봄

 

쏜살같이 달려가 먼 길에

지친 몸 안아줘야지.

 

 

+ 빈손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불교의 가르침이 있잖은가

 

그렇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게 인생이다.

 

세상이라는 여인숙에 잠시

손님으로 있다가 돌아가는 생

 

꼭 필요한 게 아니면 탐내지도

움켜쥐지도 말자.

 

바람같이 구름같이

흘러가는 나그네 인생길

 

가뿐가뿐 경쾌하고

자유로운 여행을 위하여.

 

 

+ 감기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낯익은 듯

낯선 손님

 

감기가 오늘

살며시 찾아왔습니다.

 

심한 몸살이라면

며칠 끙끙 앓아누워야겠지만

 

콧물이 흐르고

미열이 있는 것쯤이야

 

그럭저럭

견딜만합니다.

 

아무래도 감기는

뭔가 꼭 할 말이 있어

 

먼 길 애써

찾아온 게 아닐까요

 

그 말

내 어둔 귀가 알아들을 때까지

 

한 며칠 감기가

내 곁에 머물다 가면 좋겠습니다.

 

 

+ 화장터에서

 

가끔 화장터에

손님으로 갑니다

 

고인을 모신 관을

운구하는 일도 돕습니다

 

불구덩이로 들어간 시신이

두어 시간 지나면

 

한줌의 재로 변하는 것도

새삼스레 봅니다.

 

언젠가는 내 자신이

화장터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그 날

그 동안 알고 지냈던 이들의

 

잠깐의 눈물 속에

참으로 애틋한 이별이 있을 수 있도록

 

이제 앞으로 남은 날들에는

사람답게 잘 살아야 하겠습니다.

 

* 정연복 시인 공식 블로그: http://blog.naver.com/yeunbok5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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