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복음, 노동의 신앙

바람예수글 조회 수 5391 추천 수 0 2008.01.05 00:26:34
노동의 복음, 노동의 신앙

                                정연복(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이 시대의 양심적 지식인들 중 하나인 신영복 선생은 징역살이를 할 때 한 노인 목수에게서 받은 충격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지붕부터 그리는 우리들의 순서와는 거꾸로" "먼저 주춧돌을 그린 다음 기둥, 도리, 들보, 서까래, 지붕의 순서로" 그림을 그리는 목수의 모습에서 "나의 서가(書架)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낭패감"을 맛보았다고 그는 고백한다. "일하는 사람의 그림" 하나가 그에게 번쩍 계시의 빛으로 다가와 오랜 세월의 학문과 사색으로 쌓아올린 그의 드높은 지식의 탑을 순식간에 날려버렸다는 것이다(신영복, 『나무야 나무야』, 돌베개, 90쪽 참조).

일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삶의 지혜를 몸으로 체득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대어, 그리고 역사적 상상력의 날개를 펼쳐 복음서의 청년예수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예수의 아버지 요셉이 목수였으며 예수 자신도 한때 목수였다는 사실은 올바른 예수 이해에서 매우 중요하다. 아마도 예수는 철이 들면서부터 목수의 일, 다시 말해 힘겨운 육체노동에 종사했을 것이다. 이런저런 가구도 만들고 공사판을 옮겨다니며 집도 숱하게 지었을 것이다. 예수의 공생애가 서른 살 가량에 시작되었으니 적어도 예수는 15년 이상을 땀에 절고 뜨거운 햇볕에 몸을 그을리는 육체노동자로 생활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공식 교육은 전혀 받지 못했지만 세상살이나 인간이나 역사를 ‘노동’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청년예수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내 아버지께서 언제나 일하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 5:17).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요한 15:1). 요한공동체가 예수의 입술에 담아 전하는 말씀이다.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를 "일하는" 분, "농부"로 고백한다. 하나님은 곧 노동자 하나님이요 농부 하나님이라는 고백이다. 예수가 생각하기에 하나님은 하늘 저 편에 느긋하게 앉아 계신 초월적인 하나님, 자신은 몸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이 땅의 사람들에게 이래라저래라 지시하는 독재자 하나님, 인간의 머리로는 헤아릴 수 없는 뭔가 신비스러운 방법으로 이 세상을 구원하는 불가사의한 하나님이 아니었다.

"지금 내가 한 말을 듣고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 비가 내려 큰물이 밀려오고 또 바람이 불어 들이쳐도 그 집은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다"(마태 7:24-25). 이 말씀에도 목수로서 잔뼈가 굵은 청년예수의 육체노동자로서의 자의식이 담겨 있다. 기초가 튼튼한 집은 홍수가 나고 강풍이 몰아쳐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예수는 몸으로 깨닫고 있었고, 이 삶의 지혜가 공생애 이후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서 실천적으로 적용된다. 달리 말해 청년예수는 풍부한 노동 경험에 기초해서 갈릴리의 어부나 농부나 노동자들에게 자신 있게 접근하고, 바로 이 공통의 노동체험으로 그들의 아픔과 희망의 본질을 정확히 포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듯 노동의 시각에서 보면 복음서는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선다. 이 노동의  시각은 교리나 신학의 색안경을 쓰고 복음서를 읽을 때와는 전혀 다른 예수(운동)의 모습을 우리에게 펼쳐 보인다. 단적으로 말해 예수가 선포하는 복음은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복음이지 땀흘려 일하지 않고 남의 노동의 결과물을 가로채 먹고사는 얌체들을 위한 복음이 될 수 없다.

정직하게 땀흘려 먹고사는 사람들이 존중받는 사회. 그 사회를 만들어 가는 일에 교회가 앞장서야 하지 않을까. 노동자와 농민과 어민, 그리고 도시빈민들과 서민의 고달픈 살림살이에 교회가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교회의 예배와 설교와 기도에는 그런 사람들의 애환과 희망이 담겨야 하지 않을까.

한국교회는 많은 노동자들의 궁핍한 삶과 부익부빈익빈의 가속화로 치닫는 오늘 이 땅의 고통스런 현실을 노동의 복음, 노동의 신앙으로 거듭나는 뼈아픈 자기 갱신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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