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 마태 21:28-32

                                                           정연복(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오늘 본문은 하나님 나라 “비유”, 즉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기 위해 예수가 즐겨 사용한 일상생활 주변의 평범한 듯 날카로운 가시가 돋친 “이야기” 가운데 하나다. 본문의 앞뒤 문맥으로 보아 이 이야기의 청중은 예수(운동)의 적대자들인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마태 21:45)이다.

그들은 두 아들 중 “처음에는 싫다고 하였지만 나중에 뉘우치고 일하러 간” 맏아들이 “가겠다는 대답만 하고 가지는 않은” 둘째 아들보다 훌륭하다는 것을 스스로의 입으로 시인한다. 사실 코흘리개 어린애라도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는 이 비유를 너끈히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의 입에서 폭탄선언이 떨어진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있다.”

이 말을 듣고 그들은 얼마나 기막히고 분통이 터졌을까. 자칭 의인이요 백성의 지도자인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려도 유분수지 감히 자신들을 인간 쓰레기인 “세리와 창녀들”보다도 못하다고 평하다니, ‘이놈의 예수, 어디 두고 보자.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는 적개심과 살의가 솟구쳤을 게 틀림없다. 그리고 결국 예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십자가에 달리고 만다.

본문은 말만 무성할 뿐 신앙고백에 당연히 따라야 할 몸의 실천이 없는 당시의 유대교에 대한 예수의 날카로운 종교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포도원”으로 상징되는 이스라엘을 사랑과 정의의 터전으로 가꾸어야 할 종교의 역사적 책임을 소홀히 한 채 거드름을 피우면서도, 자신들만 거룩하고 세리나 창녀 따위의 밑바닥 인생들은 저주받아 마땅한 죄인인 양 손가락질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오만함에 대한 폭탄 선언.

예수 당시의 빈틈없이 엄격한 정(淨)-부정(不淨)의 이분법적 종교적 기준으로 본다면 율법을 잘 모르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율법을 준수할 수 없는 불결하고 더러운 부류에 속하며 죄인으로 낙인찍혀 마땅한 “세리와 창녀들.” 그리고 자칭 고상하고 순결하고 종교생활에 빈틈없이 열심이며 일반 대중의 존경을 받는 종교 지도자들인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그런데 정작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빼어난 종교성의 인물들이 아니라 복음서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대명사인 “세리와 창녀들”이라는 이 극적인 역전은 그저 저 옛날 팔레스틴에서 어쩌다가 한번 일어난 씁쓰름한 에피소드에 불과할까?

아니다. 이 땅의 교회와 신자들이 진정 예수의 교회요 예수의 제자들이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예수의 이 폭탄 선언이 어쩌면 바로 우리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눈치채야 한다.

한국교회는 민족의 참된 구원을 위해 제 할 일을 다하고 있는가? 성경이 가리키는 “올바른 길”을 따르고 있는가? 하나님을 입에 올리지 않는 이 땅의 선한 사마리아인들은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있는데 혹시 한국교회는 강도 만나 신음하는 이웃들을 외면한 채 종교의 겉모습에만 눈멀어 있는 것은 아닐까?(누가 10:25-38 참조). 이 땅의 교회 지도자들은 예수 당시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처럼 종교적 우월감과 교만과 기득권의 포로가 되어 교회와 이 민족의 역사를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맏아들인가 둘째 아들인가? 우리의 신앙생활은 말이 앞서는가 실천이 앞서는가? 우리는 형식적인 신앙생활은 열심히 하면서도 신앙의 본질을 교묘히 피해 가는 위선자, 혹은 그 본질을 간과하는 어리석은 자들은 아닌가?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의 모습을 하나님과 역사 앞에서 늘 겸허하게 반성하기보다는 성속(聖俗) 이분법의 편협한 신앙심에 사로잡혀 이 땅의 “세리와 창녀들”을 죄인으로 내모는 데 더 분주한 이중 인격자들은 아닌가? 오늘 우리의 신앙과 삶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오늘 나는 누구인가? 생활 속에서 “아버지의 뜻”을 조금이나마 실천하고 있는가? 몸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로 말과 머리로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나의 “포도원”인 이 민족 이 겨레의 숨가쁜 고난과 희망의 역사를 외면한 채 교회 울타리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예수가 “세리와 창녀들”을 편들고 있는 깊은 뜻을 우리 신자들은 곰곰이 묵상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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