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기본적인 행위들이기 때문에 - 마태 25:31-46

                                                                                                 정연복(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그 계명은 자비로 불리었고, 그 다음으로는 사랑으로, 그 다음으로는 참여로, 그리고 오늘날에는 연대성으로 불린다. 굶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헐벗은 자에게 옷을, 집 없는 자에게 은신처를, 그리고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너무나 기본적인 행위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마지막 때에 그러한 행위들에 비추어서 갚음을 당하게 될 것이다"(칠레 주교들의 성명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역사의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믿는다. 그 심판에 따라 천국행과 지옥행이 결정되리라는 것을 또한 믿는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믿음에 습관적으로 길들여진 나머지 그 믿음에 담긴 깊은 뜻을 망각할 때가 너무 많다.

하나님의 심판! 천국행과 지옥행! 이 얼마나 가슴 떨리는 말인가. 하나님의 심판은 바로 나를 향해 있다. 천국행과 지옥행의 극적인 갈림길에 서야 할 사람은 바로 나다. 하나님의 심판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역사 앞에서 책임적인 존재로 살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명이다.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은, 나도 잘못하면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하루하루 충실한 삶을 살겠다는 확고한 신념의 표현이다.

우리가 귀가 닳도록 듣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편리한 공식 하나로 심판과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 공식의 행간(行間)을 읽어야 한다. 예수를 믿는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헤아려야 한다. 나의 삶이 예수를 믿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따져 보아야 한다. ‘예수 천당’은 분명히 맞는 말이지만, 우리는 그 말의 진실성을 우리의 삶으로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이 우리의 천국행과 지옥행이 걸린 시험이라면, 하나님은 자상하게도 그 시험 문제에 대한 정답을 일러 주신다. 시험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고, 정답은 뻔한데 뭘 걱정하느냐고, 내가 정답을 미리 가르쳐 줄 테니 그대로만 옮겨 적으면 된다고 하나님은 우리를 안심시켜 주신다.

“너무나 기본적인 행위들.” 사람이 사람답기 위해 생략할 수 없는 최소한의 것. 하나님이 성서를 통해, 그리고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일러 주신 정답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일러 주신 이 소박한 정답을 무시한 채 너무나 거창한 것, 너무나 난해하고 세련된 것을 답안지에 가득 채우려고 애쓰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답안은 글로 적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말로 재잘거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그 답안을 몸으로, 삶으로, 생활로 적어야 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해도”(마태 7:22), 인간으로서 “너무나 기본적인 행위들”을 소홀히 한 사람들은 심판날에 “악한 일을 일삼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마태 7:23)는 불합격 판정을 받게 될 것이다.

오늘 나는 그 답안을 적고 있는가? 오늘 내 인생살이는 한 걸음 한 걸음 천국을 향해 다가서고 있는가? 내 일, 내 가족, 내 교회, 내 목회 때문에 이 땅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자비”와 “사랑”, “참여”와 “연대성”이라는 그 뻔한 답안을 성실히 적어 가는 일에 너무 게으른 것은 아닌가?

그리고 “오늘 우리나라는 굶주린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사람들에게 마실 것을 주고 있는가? 우리의 형제 자매들 중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가? 나그네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있는가? 헐벗은 사람들에게 입을 것을 주고 있는가? 병든 사람들을 돌보고 있는가? 감옥에 갇힌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해 주는가?”(로버트 브라운).

인간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너무나 기본적인 행위들”에 충실한 것 이외에는 별다른 구원의 묘약이 없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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