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문(祝文)
- 장병기 목사님의 취임을 축하하며
벌써 10년이 훌쩍 지난 이야기입니다. 1998년 K여름대회 때의 일이니까요. 신자유주의라는 말이 대학 사회 안으로 흘러들던 시절, 당시 기독교 영성과 사회적 실천의 문제를 고민하던 우리들은 사회평화봉사단이라는 조직을 꾸려 나름의 돌파구를 마련해보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무허가 빈민촌이 밀집해 있던 인천 계양구 일대를 첫 번째 현장으로 삼았지요. 이듬해 우리는 북한의 식량난과 탈북자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하며 연변 일대에서 통일 학교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일정을 마치자마자 K대회에 합류했던 것이지요.
장병기 목사님에 대한 가장 인상적인 기억은 그곳에서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대회 마지막 날 밤 집회에서요. 저는 그때, 어제까지 제가 있었던 연변의 그곳과 지금 제가 있는 집회의 공간이 서로 다르지 않은 현장이라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신앙과 실천이라는 견고한 문제들이 그 어떤 불화도 없이 녹아내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실천하는 청년 예수는 어떤 관념이나 구호가 아닌 지금 여기에서 매 순간 새롭게 실현되는 실제이자 신비 같았습니다.
KSCF의 총무로 취임하시는 장병기 목사님을 통해 저는 두 가지의 소박하고 즐거운 상상을 합니다. 첫 번째는 신앙을 실천하고 시대와 소통하기를 소망하는 학생들에 대한 친절한 안내자, 안내자이되 앞서 있지 않고 함께 걷는 안내자의 모습이고요. 두 번째는 지금 여기 에큐메니칼 기독학생운동의 새로움이 무엇인지를 묻고 또 묻는 질문자, 질문자이되 혼자 묻지 않고 함께 묻는 질문자의 모습입니다. 함께 묻고 또 함께 걷는 길에서, 기독 학생 운동의 어려운 시절은 가장 빛나는 시절로 기록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목사님의 취임이 K연맹을 좀 더 튼튼하게 하고 기독 학생 운동을 보다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경쟁과 불안이 도저(到底)하게 흐르는 대학 속에서 에큐메니칼 학원 선교의 미래는 무엇일까요. 저에게 기독 학생 운동의 미래는, 교환가치적인 삶이 일상이 되어 버린 이 사회가 단단한 율법의 세계가 아니라 결국은 사랑과 용서의 계약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K가 잔혹한 생존의 필연을 사람 사이의 사랑과 용서의 약속으로 바꾸어 놓는 운동을 새롭게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그 아름다운 운동을 시작하신 장병기 목사님을 우리는 부러워해야 하는 건 아닐까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에, 목사님께서 K와의 우정을 용감하게 실천해주셨네요.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장병기 목사님의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