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시 모음> 정연복의 ‘은혜의 바다’ 외
+ 은혜의 바다
물을 떠나면
물고기는 어떻게 되나
괴로움에 몸부림치다
금세 숨을 거둔다.
은혜의 바다를 등지면
사람은 어찌 될까
숨 막혀 숨이 막혀서
이내 죽음을 맞이할 거다.
지금 이 순간도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은
자연과 동료 인간들의 온갖
은혜에 품어져 있다는 뜻이다.
+ 은혜 받기
하늘에서 내려오는 밝은
햇빛을 어떻게 받을 수 있나
아주 간단하다 그냥
햇빛 아래 있기만 하면 된다.
찜통더위 속 시원한
소낙비를 어떻게 맞을 수 있나
우산을 걷어치우고 그저
소낙비 속에 서 있으면 된다.
은혜를 받으려고 애쓰고
안달할 것 하나 없다
아무 욕심 없이 자연의 품속에
살아가는 나무 같기만 하면 된다.
+ 선물
내가 이 세상에
생겨난 것
나의 의지가 아니라
공짜 선물이다.
하늘과 땅 사이
수많은 아름다운 자연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도
거저 받아 누리는 거다.
선물로 얻은 목숨
선물로 지탱되는 나의 삶을
사랑과 정성으로 잘 포장하여
누구에게 선물하고 싶다.
하늘과 땅의 갖은 은혜로
살아가는 나무가
자기 그늘을 아낌없이
선물로 내주듯이.
+ 엄마
엄마 뱃속에
열 달 동안 살았다
돈 한 푼 내지 않고
공짜로 세 들어 살았다
생살이 찢어지는 산고(産苦)로
세상의 빛을 보았다
엄마가 주는 젖과 밥 얻어먹고
내 목숨 지금껏 이어졌다
엄마의 보살핌과 수고로
키가 자라고 마음도 자랐다
엄마의 쪼글쪼글한 주름살만큼
나는 엄마에게 은혜를 입었다
늙고 볼품없는 엄마 있어
지금의 내가 있는 거다.
엄마는 온 세상에서
가장 사랑 많고 거룩한 종교
날개 없는 지상의 천사
아니, 사랑의 신(神)!
+ 나무의 기도
하늘과 땅 사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천지가 베풀어주는
넘치는 은혜로 살아갈 뿐.
땅이 없고 하늘이 없으면
생겨날 수도 없는
나는 본디
무(無)입니다.
이 간단하고도 깊은 진실
늘 가슴에 새기고서
죽는 날까지 땅에 뿌리박고
하늘을 사모하며 살게 하소서.
* 정연복 시인 공식 블로그: http://blog.naver.com/yeunbok5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