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와 신발 시 모음> 정연복의 구두

 

+ 구두

 

그 사람과는 얼굴

마주치고 싶지 않다

 

오랜 세월 쌓인

맘속 앙금이 태산 같다

 

용서도 화해도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다가도 그 사람이

벗어놓은 낡은 구두를 보면

 

왠지 안쓰럽다

다 용서해 주고 싶다

 

이제는 낡아진 앙금이라고

훌훌 털어 버리고 싶다.

 

 

+ 신발에게

 

내가 가는 곳 어디든지

말없이 동행해 주었지

 

아스팔트 길

흙 길

진흙탕 길

 

한길 골목길

꽃길 오솔길

 

밝고 빛나는 길

어둡고 쓸쓸한 길

 

내 발길 닿는 그 어디든

늘 함께였으니

 

내 하루하루 생활의 흔적

내 삶의 기쁨과 슬픔

속속들이 알고 있겠지

 

지상을 거니는 내 인생길의

영원한 동반자인 너.

 

낮이나 밤이나

단 하루의 휴식도 없이

 

무척 숨가쁘고 고단했을

너의 생이건만

 

한마디 불평도 없이

늘 발아래 몸을 낮추는

 

소중한 너의 존재

까맣게 잊고 살았던 때 많아

정말 미안해

 

나의 숨결

나의 발길 멈추는 그 날까지

 

우리 함께 가자

묵묵한 겸손의 성자(聖子)

 

 

+ 신데렐라

 

제 발 사이즈에 딱 맞는

유리구두의 주인공

 

행운의 신데렐라가 되는 것은

무지무지 드문 일이지만.

 

사람은 누구든지

행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마음의 사이즈만

잘 조절하면.

 

허황된 욕심의 크기는 줄고

순수한 사랑의 크기는 늘어

 

이래저래 예쁜 모양의

마음 하나만 있게 되면.

 

 

+ 늙는다는 것

 

새로 산 구두는

반짝반짝 빛은 나지만

 

발뒤꿈치가 까지고

걸음걸이도 불편하다.

 

많이 신어서 낡은 구두는

겉모양은 볼품없지만

 

발에 맞게 잘 길들여져서

오랜 벗같이 편안하다.

 

늙는다는 것은

슬퍼할 일만은 아니다

 

인생살이가 편해지는 것

참 좋은 일 아닌가.

 

 

+ 개미와 신발

 

소요산 부근 소요초등학교에 딸린

지혜의 등대라는 작은 도서관

사서인 아내에게서 들은 얘기입니다.

 

며칠 전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가

신발을 잃어버렸답니다

 

그 아이는 심성이 참 고운데

아마 또래 친구들이

짓궂게도 신발을 감춘 모양입니다

 

신발을 찾는다고 학교를 돌아다니더니

달랑 한 짝만 들고 왔대요

 

그리곤 잠시 눈물을 글썽이더니

갑자기 표정이 밝아지면서

아내에게 말했대요

 

선생님, 제 신발 한 짝을

누가 가져갔는지 알아요.‘

 

아내가 그게 누구냐고 물었더니

샛별같이 반짝이는 두 눈 크게 뜨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답하더래요.

 

개미 열 마리가

내 신발 한 짝을 물고 갔나봐요.‘

 

개미는 제 몸집보다 큰 것도

물고 다닐 수 있으니

힘이 무척 셀 거라 생각했고

 

그런 개미 열 마리가 힘을 합하면

신발까지도 너끈히 물고 갈 수 있다고

나름대로 궁리했던 모양이에요

 

참 깜찍하기 그지없고

또 귀여운 발상이 아닌가요

 

어린아이들의 순수한 맘속에는

멋진 시인이 살고 있나 봐요.

 

시 나부랭이라도 쓰려면

세상을 밝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동심이 참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 정연복 시인 공식 블로그: http://blog.naver.com/yeunbok5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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