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비 시 모음> 정연복의 꽃비

 

+ 꽃비

 

머나먼 하늘에서부터

오는 게 아니다

 

기껏해야 몇 미터의

높이에서 내린다.

 

두어 시간쯤

계속해 오는 것도 아니다

 

한순간 하늘하늘

허공에 날리면 그뿐.

 

그런데 그런데도

참 이상하다

 

점점이 내리는 비에

내 가슴이 흠뻑 젖는다.

 

 

+ 꽃비

 

보슬보슬

봄비 내리는 날에

 

아롱아롱

꽃비도 함께 내린다.

 

지상에 며칠

머무르는 동안

 

순수의 불꽃이었을 뿐인

죄 없는 생이었건만.

 

온몸 마지막으로

맑은 물에 씻고

 

가만히 대지로 돌아가는

작고 아름다운 벚꽃.

 

 

+ 꽃비

 

며칠 만발했던

벚나무에서

 

오늘은 사르르

꽃비 내린다

 

하얀 눈송이같이

춤추며 떨어지는 잎들.

 

단 며칠 살아서도

그리도 밝고 눈부시더니

 

지면서 떠나면서

더욱더 아름답구나

 

허공을 가벼이 나는

꽃이여.

 

 

+ 꽃비

 

하늘은 맑고

햇살 따스한데

 

꿈결인 듯 내 눈앞에서

내리는 비에

 

바삐 가던

발걸음 멈추었네.

 

소리는 없고

모양과 빛깔만으로

 

허공에 잠시 맴돌다

대지에 내려앉는

 

꽃비여 아름답고도

슬픈 꽃비여.

 

작년처럼 올해도

딱 며칠만 세상에 머물다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조용히 떠나가는

 

몸은 작지만 영혼은 깊은 꽃

벚꽃이여.

 

 

+ 꽃비에게

 

꽃비야 춤추며 내리는

아름다운 꽃비야

 

봄이면 봄마다

널 맞는다고 해도

 

내가 죽는 날까지 널

몇 번이나 더 맞을 수 있을까

 

스무 번쯤만 되면 좋으련만

그럴 수 있을까.

 

너는 죽어서도 다시 살아

봄이면 봄마다 찾아오겠지만

 

언젠가 나는

지상에 더 이상 없으리.

 

 

+ 꽃비 내리는 날에

 

꽃비 내리는데

아름다운 꽃비 내리는데

 

그 꽃비 맞으며

순해지는 가슴들이 있는데

 

세상이 악하다는

생각은 잠시 접기로 하자.

 

꽃비 내리는데

아롱아롱 꽃비 내리는데

 

그 꽃비 맞으며

연인들이 다정히 걸어가는데

 

세상에 사랑이 식었다는

생각은 떨쳐버리기로 하자.

 

 

+ 꽃비와 천국

 

아롱아롱

내리는 꽃비 보며

 

문득

머릿속에 스치는 것.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꼭 저 높은 하늘까지

가닿아야 하는 걸까.

 

지상에서 꽃처럼

한 생 순수하게 살면

 

그 자체로 이미

천국에 든 것이 아닐까.

 

비록 단 며칠의

너무나도 짧은 삶이었지만

 

아름답다가 이제 가만히

대지에 눕는 순한 벚꽃같이.

 

 

+ 꽃비의 기도

 

한줄기

실바람에도

 

허공에 사뿐히

날리는 꽃비같이.

 

지상에서

한 생을 다하고

 

돌아가야 하는

그 날에.

 

나의 몸

나의 영혼도

 

죄와 욕심이 다 씻기어

가벼이 되기를!

 

* 정연복 시인 공식 블로그: http://blog.naver.com/yeunbok5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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